 선생님 답글 잘 읽었습니다.
올리신 답글을 어제 저녁무렵에 읽고서
'하긴, 기사라는 게 독자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앞뒤 정황이 잘리기 일쑤니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죄송한 마음도 들었구요.
그래서 지금 답글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고 들어오니 덧붙이신 글이 보태어져 있네요.
다시 찬찬히 제 글과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덧붙이신 글에서는 선생님께서 갑자기 제 글을 오해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마치 윤극영 동요동시에 대한 미성숙한 사랑때문에
하신 말씀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기사 중에 "동요가 아닌 시로 봐야 할 것" 이라는 말씀을 짚어서 지적한 것이었지요.
확대해석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동요든 동시든 시든, 어느 연령대에 만들어졌든, 마찬가지로 모두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 예술가의 작품의 뿌리란 그 예술가의 혼이며 정신 세계를 뜻하는 것이지요.
조금 달리 이야기 되기도 하는 경우는, 그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친 구체적인 사람이나 작품, 상황(환경)
을 가리키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런 경우에라도 뿌리의 의미는 사람이나 작품이나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은 철학적 가치를 뜻하는 것이지요.
다만 젊은 뿌리가 피운 꽃과 장년의 뿌리가 피운 꽃의 차이점은 당연히 있는 것이겠지요.
윤극영 선생이 동요와 동시로 다 말하지 못한 것을 시로 형상화 시키셨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요.
그래서 제가 첫 글에서 "시로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시심으로 봐야 할 것"이라는 표현이 옳으시지
않았을까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만든 작품이라 해서 그것은 표층이고, 나이 들어 만든 작품이라 해서 심층이라는 말씀 또한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위대한 명작들을 남긴 예술가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물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성숙하게 농익거나 혼돈과 미완이 정립되어가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순수한 예술혼과 직관이 옅어지거나 사라져가는 경우 또한 있습니다.
그런 면만 놓고봐도 예술작품의 만들어진 연대를 놓고 어느 것이 심층이고 어느 것이 표층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당연한 논리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혹시 윤극영 선생의 아름다운 동요동시까지도 하등한 장르(우리나라는 아동관련예술을
하등장르로 여기는 풍토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로 여기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동요가 아닌 시로 봐야 할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 말꼬리를 잡은 것이 아님은 덧붙이신 글이
그대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표층과 심층으로 나누어 생각하시는 이상,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타당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동요동시를 만드는 어떤 자손이 있어
훌륭한 시인이었던 아버지께서 남기신 미발표 동요와 동시를 엮어 내면서
아버지에게 접근하려면 시가 아닌 동요동시를 봐야 하며 아버지의 시의 뿌리는 동요동시라고 했다면,
저는 그때도 똑같이 빗댈수 있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의 속뜻이 헤아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표현, 그 생각에 대해서만은 다시금 깊은 고민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동요와 동시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동요와 동시를 대변할 입장에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윤극영 선생은
어린이들이 부를 노래가 있을 필요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시대에 어린이를 위한 노래를 만드신
선구자셨고 ,
선생의 아름다운 노래는 척박하고 고달팠던 시대에 황폐해진 이 나라 민족의 가슴을 쓸어주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 정도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향지 선생님,
제 글로 인해 마음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 힘든 일을 막 해내신 때여서 더욱 죄송스럽습니다.
<윤극영 전집 1,2>를 통해 윤극영 예술세계가 한층 넓어지고, 그 분이 이루신 업적이 새롭게 재조명되기를 빌겠습니다.
보지를 못했으니 알수는 없는 일이지만, 노래에 있어서 선구자적이셨던 윤극영 선생은
어쩌면 시에 있어서도 그 시대 다른 시인들의 관점을 앞서가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사서 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추신: 선생님, 이 글 읽으시고 나서 제 글들을 지우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선생님의 훈훈한 홈 분위기에 누를 끼쳐드린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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