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이향지가 해체시인이냐? (보충=고딕부분)
어서오세요, 김수경님!
나흘동안 지방 취재를 다녀오느라 대답이 좀 늦었습니다.
이향지의 시에 관심을 갖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런 질문에 드리는 대답을 통하여 저도 제 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이향지가 해체시인이냐?"
누구의 어떤 말씀이나 글이 이런 질문을 하시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물음엔 간단히 대답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한 시인에 대한 평가나 특징 갈래짓기는 시인 스스로가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인된 나는 오직 쓸 뿐입니다. 인간 된 나의 삶, 그 희로애락을 둘러싼 주제는 다른 이들과 같거나 비슷할지라도, 표현방법에서는 늘 새롭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이런 저런 낯선 시도를 해보게 마련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에 실린 [기억의 계단]이란 시. 그 성공여부를 떠나서 그 당시의 나로서는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시는 분명 관념시에 속합니다만, 그러한 기법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이해를 받게된 셈이지요. 내가 쓴 시 중 해체의 기미가 가장 짙은 것이기도 하구요. 또 한편은, 시집 <<구절리 바람소리>>에 실린 [여름날의 몽상]이란 것입니다. 이 시도 관념의 기미가 짙습니다만, 분리된 목성의 형태를 통하여 최소한의 소통은 되게 해놓았지요. 또 한편은 <<정신과 표현>>에 발표했던 [된장 끓이는 저녁]이란 것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항아리 뚜껑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습니다만, 이 홈에도 올라있으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 또 있네요. 현대시학에 발표했던 [무채색의 새벽]과 현대시에 발표했던 [그림자의 언덕]과, [창 없는 겨울이 지나간다]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상형시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 시들은 내용을 읽기 전에 그 형태를 통하여 이미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들 시에는 그러한 기법이 가장 적절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시들을 평이한 형태로 썼더라면 감동이 덜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흔적들을 증거로 해체시인이다 아니다 구분 짓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정희 시인도 몇 편의 상형시를 남겼고, 아폴리네르도 몇 편의 상형시를 남겼지만, 그분들이 해체시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시를 쓰는 가장 큰 목적은 '나'라는 개체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그 안에서의 움직임들을, 그 형상을, 그 숨결을, 그 색깔들을, 그 맛을, 그 감촉을, 시라는 형식을 통하여 그려보고 싶어서입니다. 일방통행적인 시간 속에서 되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길을 살아내면서, 겪고 느낀 점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코드를 통하여 표현해보고 싶었지요. 아직까지 제 마음에 흡족할만한 것은 얻지 못였습니다만, 이런 과정에서 남들과 차별화 되는 기법과 어조로 표현하려는 욕심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 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더랬습니다. 또 들러주시기를....
┼ 김수경(gleei@hanmail.net) : 궁금한 게 있습니다. ┼
│ 이향지님이 해체시인인가요.
│
│ 혹시나 해체시인으로 꼽히셨다면 어떠한 작품으로 그렇게 되셨는지
│
┼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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