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4/11(수) 20:26 (MSIE5.0,Windows98) 211.192.203.137 1024x768 [황현산],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 김소월/왕십리   *이 글은 필자이신 황현산 선생님의 허락을 현대시다락방에서 옮겨둡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황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김  소  월 /「往十里」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황  현  산                                   지난해 여름 젊은 비평가들의 비평적 자질을 둘러싸고 작은 논란이 일었을 때, 소월의 시 「往十里」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거기 끼어 있었다. 나는 그 논쟁에 뒤늦게 개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깊은 관심이 있다.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으면죠치.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 햇지.                      가도가도 往十里 비가오네.                                            웬걸, 저새야                      울냐거든                      往十里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마자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天安에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저젓서 느러젓다데.                      비가와도 한닷새 왓스면 죠치.                      구름도 山마루에 걸녀서 운다.1)   홍정선은 그 논의의 단초가 되었던 글에서 이 시의 앞 대목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했다.   왜 가도가도 왕십리인가? 지리상의 왕십리는 그럴 이유가 없다. 길어도 한 시간 이내에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 시의 화자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설화에서 무학대사의 왕십리는 십리만 더 가면 궁궐터가 있다는 말이었다. 목적지는 십리 밖에 분명히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으로 문제는 해결됐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에겐 그런 보장이 없다. 그래서 "가도가도 왕십리"이며, 그가 가는 곳엔 개인 날이 없이 언제나 비(비로 상징되는 어떤 것)가 오고 또 온다. 그러므로 "한닷새 왔으면 좋지"라는 말은 (...) 닷새쯤만 내리고 그만 그치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그 정도라면 그래도 견딜 수 있을 텐데, "여드레 스무날엔 오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는데 이놈의 비는 그렇지 않다. '온다 - 오누나 - 올지라도'의 운률로 이어지는 이 지리한 장마, 가도가도 왕십리일 따름인 것이다.2)   결론적으로 말해서 홍정선의 이 해석은 옳으며 지지할 만한다. 그러나 좀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소월은 이 시에서, "왕십리"라는 말을 제목으로 한 번, 본문에서 두 번 사용하고 있는데, 적어도 본문의 첫 번째 "왕십리"는 무학대사의 설화에서처럼 "십리를 가라"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말이 들어 있는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라는 시구는 '십리를 가면 또 십리를 가라고 하고 십리를 가면 또 십리를 가라는 식으로 날마다 비가 오네'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시의 첫 대목에서, '오다' 동사의 어미와 어조를 바꾼 '온다, 오누나, 오는, 올지라도'의 반복으로 표현되는 지리한 장마의 정황과 잘 부합한다. "오는비는 / 올지라도 한닷새 왔으면 좃치"라는 시구가 '비가 오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한 닷새만 왔으면 괜찮지'의 뜻인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3). 그런데 문제는 "여드레 스무날"과 "초하루 朔望"이다. 홍정선은 "'여드레 스무날엔 오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는데 이놈의 비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로 화자의 생각을 짚어 슬쩍 넘어가고 있는데, 이 의미파악이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논의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아 설득력을 얻지 못 했던 것 같다. "초하로 朔望"은 일부의 의미가 중복된 표현이다. "朔望"이라는 말 자체가 '초하루와 보름'을 아울러 뜻하기 때문이다. 음력에서 朔은 초하루를, 望은 보름을 말한다. 삭망과 관련해서는 朔望潮라는 말이 있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 무렵에 썰물과 밀물의 차가 커지는데, 이 조수를 그렇게 부른다. 즉 삭망조는 사리와 같은 말이다. 이와 반대로, 음력 여드레와 스무사흘을 전후해서는 간만의 차가 작아, 물이 들어도 적게 들고 써도 적게 써는데, 이 조수를 '조금'이라고 부른다. '조금'과 관련해서, 그리고 문제의 「往十里」와 관련해서, '조금치'라는 것이 있다. 조금에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며, 하다못해 구름이라도 낀다고 옛날 민간에서는 믿고 있었는데, 이처럼 조금에 날씨가 궂어지는 현상을 조금치라고 부른다. 이 믿음에 어느 정도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전라도의 한 섬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지금처럼 일기예보체제가 발전하지 않아서, 오직 이 조금치를 계산해서 운동회나 소풍 같은 학교 행사의 날자를 잡곤 했으며, 그렇게 해서 행사를 망친 적은 없었다. 물론 그믐에도 그뭄치가 있고 보름에도 보름치가 있다. 그러나 이 그믐치/보름치와 조금치 간에는 그 '치'의 성격이 다르다. 조금치는 예정된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믐치와 보름치는 결과적인 것이고 예외적인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내 고향 사람들은 조금에 내려왔던 비와 바람의 귀신이 보름날이나 그믐날에 떠나면서 그냥 가기 서운해 잠시 비를 뿌리고 가는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비는 조금에 내려와 삭망에 간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여드레 스무날엔 / 온다고 하고 /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 햇지"라는 시구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소월은 한 달의 첫 조금에 관해서는 "여드레"라고 정확히 그 중심일자를 적고 있는데, 뒷 조금에 관해서는 '스무사흘' 대신에 "스무날"이라고 쓰고 있다.4) '스무사흘'로는 시인이 이 시에서 가능한 한 유지하려 하는 칠오조의 음절수를 맞출 수 없다. 게다가 "스무날"은 조수로 보아서 벌써 조금 현상이 중간 이상 진행된 날이고, 날씨로 보아서는 이미 조금치의 영향권에 들어간 날이니, 이렇게 쓴다고 해도 음수율 때문에 의미가 크게 왜곡되는 것은 아니다. 제3연에 관해서 홍정선은 지리한 장마로 표현되는 비애 속에서 시의 화자는 "자기 옆에서 자기를 더욱 처량하게 만드는" 새에게 "웬걸, 저 새야 / 울랴거든 /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쓴다.5) 이 설명 또한 딱히 잘못된 것은 없지만, 시 전체를 해설하려 든다면 역시 다른 말이 더 필요하다. 여기서 "往十里건너가서"의 왕십리는 앞의 그것과 약간의 의미 편차가 있다. 이 왕십리는 '십리를 가라'는 명령이면서 동시에 그 명령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한 땅의 이름이다. 그래서 "往十里건너가서"라는 말은 '늘 십리를 더 가라고만 하는 이 지겨운 유예의 땅과 시대를 통과해서'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울고 있는 벌새가 "비마자 나른해서" 운다는 것이다. 오랜 비에 감각과 정신이 반쯤 마비된 이 벌새에게는 그 불행이 왜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성찰하려는 용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 날의 명랑한 삶을 상상하고 희망할 기력조차도 없다. 조금의 궂은 날 뒤에 삭망의 개인 날이 온다는 법칙이 무시되어 비정상이 정상이 된 '왕십리'에서 벌새는 그 일상에 나름대로 안주하여 오직 시대와 땅의 비애 속에 자신의 비애를 섞어 넣고 있다.6) 끝없이 비 오는 일이 '자연'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처럼 단조로운 슬픔이 그의 생활 감정의 전체를 덮고 있다.7) 어디 벌새뿐인가. 천안 삼거리의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 늘어져 있다는 소문이다. 온누리와 온 시간이 비내리는 십리에서 또 비내리는 십리로 끝없이 이어지고 구름마저 무기력하게 "山마루에 걸녀서" 울 때, 세상을 무한하게 떠돌며 그 삶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안개처럼 형체없는 이 슬픔이다. 천지간에 미만한 이 비애에 아직 마비되지 않은 것은 "웬걸"하고 놀라는 시인의 의식뿐이다. 그래서 시인이 진정으로 비극으로 여기는 것은 쉼도 끝도 없이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벌써 습관이 되고 자연이 되어 산것들의 모든 기운이 '나른하고 촉촉하게' 거기 젖어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며, 오늘 십리를 걸어간다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그 정황이 내일 다시 "往十里"할 의지를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식민지의 비극이 아마 그러하리라. 장만영과 박목월이 50년대에 편찬한 『素月詩鑑賞』에서 이 「往十里」는  감상이라는 이름의 해설을 얻지 못한 채, <素月詩餘篇>에 다른 빛 없는 시들과 함께 묶어 있다.8) 편자들이 이 시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일까, 해석을 견뎌낼 만한 작품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 시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으며, 소월을 달리 보게 할 어떤 요소도 들어 있다. 한편 나는 다른 측면에서도 이 시에 관심을 갖는다. 이 시는 베를렌느의 시집 『잊혀진 아리에타』의 세 번쩨 시를 생각나게 한다.                                         Il pleut doucement sur la ville.                                                                             - Arthur Rimbaud                        Il pleure dans mon coeur                      Comme il pleut sur la ville;                      Quelle est cette langueur                      Qui pénètre mon coeur ?                                            O bruit doux de la pluie                      Par terre et sur les toits !                      Pour un coeur qui s'ennuie                      O le chant de la pluie !                                            Il pleure sans raison                      Dans ce coeur qui s'écoeure.                      Quoi ! nulle trahison ?...                      Ce deuil est sans raison.                                            C'est bien la pire peine                      De ne savoir pourquoi                      Sans amour et sans haine                      Mon coeur a tant de peine ! 9)                              거리에 포근하게 비가 내리네.                                                                                  - 아튀르 랭보                        거리에 비 내리듯                      내 가슴에 눈물 내리네                      이 울적함 무엇이기에                      내 가슴 깊이 스며드나?                                            땅에 지붕 위에                      오 포근한 빗소리여 !                      울울한 마음을 위한                      오 비의 노래여 !                        내키는 것 없는 이 가슴에                      까닭 없이 눈물 내리네                      무어라고 ! 돌아선 것은 없다고 ?...                      이 슬픔은 까닭이 없네.                        가장 몹쓸 아픔은                      왠일인지 모른다는 것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가슴이 그리도 아프네 !   이 시에 담긴 기교의 주안점은 인칭과 비인칭의 삼투에 있다. "비가 내린다/il pleut"는 서양어에서 시간, 기후 등을 말할 때 늘 사용하는 비인칭 구문이다. 그런데 베를렌느는 '울다, 눈물을 흘리다'의 뜻을 지닌 인칭동사 'Pleurer'를 비인칭동사처럼 "눈물 내리네/il pleure"로 쓰고 있다. 그래서 우는 것은 그가 아니며, 비가 내리는 자연 현상처럼 눈물이 그의 가슴에 흐를 뿐이다. 비 오는 날의 우울함과 그의 슬픔은 같은 것이며, 그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은 땅과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비와 구분되지 않는다. 비와 눈물은 그렇게 "포근하게/doucement" 서로 적신다. 시인은 가슴이 아프지만 그의 아픔은 세상과 자연의 아픔 속에 아련히 녹아든다. 자연 현실과 마음의 현실이 틈없이 연결되어 만들어 낸 회색 배경 속으로 한 자아의 동일성이 그와 같이 삼투한다. 그런데 이 '포근한' 슬픔은 저 「往十里」에서 "나른해서" 우는 벌새, "촉촉히 젖어서" 늘어진 실버들, 산마루에 걸려 늘어진 구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슬픔이면서 동시에 슬픔의 배경이다. 그것들은 아픈 개체들로서 인칭인 동시에 그 아픔의 보편적 풍토로서 비인칭이다. 소월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모든 마음들 속에 안온하게 파고 들어가는 이 비애를 말함으로써 현대시의 한 감수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베를렌느와 소월은 같을 수 없다. 한 '선진 문화'의 중심에 살았던 베를렌느에게 이 슬픔은 모든 섬세한 마음들이 결국 거기 이를 수밖에 없는 표준적 감정이었다. 그는 이 슬픔에 인간적인 동기가 없음을 반복하여 말함으로써 그 보편적?절대적 성격을 강조하려 한다. 식민지의 시인인 소월에게 이 비애는 표준과 정상의 권리를 부당하고 위험하게 요구하는 비정상의 감정이었다. 그는 울더라도 "往十里건너가서" 울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감정이 정황적이고 시대적인 것임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이점에서 「往十里」에는 적어도 식민지 시대에 우리의 시를 움직여 온 미학의 두 축이 함께 들어 있다.   1) 김용직 편저, 『김소월 전집』,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p. 157. 2) 홍정선, 「공허한 언어와 의미 있는 언어」, 『문학과 사회』 1998년 여름호, p. 605. 3) 어느 연구자가 제안한 것처럼 이 시구를 '이왕 비가 오려면 한닷새 퍼부었으면 좋지'의 뜻으로, 다시 말해서 비가 한꺼번에 많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는 결코 없다. "올지라도"는 양보의 표현이며, 따라서 그 뒤에는 그 양보한 내용에 대립하여 그것을 제한하는 표현이 와야 한다. 이를테면, '때리는 매는 때릴지라도 한 열 대만 때리면 괜찮지'라고는 말해도, '때리는 매는 때릴지라도 한 열 대는 때려야 괜찮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누가 '때리는 매는 때릴지라도 한 열 대 때리면 좋지'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매를 때리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한 열 대만 때리면 괜찮지'라는 말일 수는 있어도, '이왕 매를 때리려면 한 열 대는 때려야 좋지'라는 말일 수는 없다. 4) "여드레 스무날"이 "스무여드렛날"의 도치라는 해석은 무리하다. 아무리 시라고 해도 도치할 것이 있고 안 할 것이 있다. 5) 위의 글, p. 605. 6) 벌새는 새 중에서 가장 작지만 날아 다니는 힘이 가장 강한 새로 알려져 있다. 이 작고 활력 있는 새의 '나른한' 슬픔은 그 비애의 강력한 침투력을 표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벌새는 아메리카 원산으로 주로 열대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또다른 종류의 작은 새이며 한국의 텃새인 동박새와 이 벌새를 시인이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동박새는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시의 내용과 부합한다. 7) 예의 논쟁에서 이 시의 해석과 관련하여 홍정선의 상대자였던 정끝별은 "상식적으로 비가 오는 동안에는 새가 날지도 울지도 않"으며, "비가 그쳐야 새는 날고 운다"는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가능한 해석 체계와 열린 시읽기」, 『작가세계』 1998년 가을호, p. 322 n. 4). 그러나 지금 벌새가 우는 것은 비가 그쳤기 때문이 아니라, 비가 그치리라는 희망을 포기한 나머지 이 비상의 정황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만일 비가 그쳤다면 시인이 "往十里건너가서 울어나다고"라고 말할 턱이 없다. 8) 필자가 참조한 것은 <張萬榮/朴木月, 『素月詩鑑賞』 (增補版), 博英社, 1957>이다. 9) Verlaine, "Ariettes oubliées III", OEuvres poétiques complètes, «Bibl. de la Pléiade», 1962, p.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