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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제1분기 문예지게재 우수문학작품 선정 목록/선정평  

문예진흥원 '문학회생프로그램'
"힘내라!, 한국문학!" 에서 선정한
2005년 제1분기 문예지게재 우수문학작품
선정목록 및 선정평 모음입니다.

2005년 제1분기 문예지게재 우수문학작품(시)



100 . <빈들> 시 류외향 다층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9. <에로틱파괴어린 빌리지의 겨울> 시 황병승 파라21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8 .<강의 계절> 시 허만하 파라21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7. 집시의 시간 시 진은영 파라21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6. 집 위에서 낯선 열쇠를 열다 시 조윤희 시와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5.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시 장옥관 창작과비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4. 해산 시 이재무 시와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3. 아버지 시 이재무 시와반시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2. 내가 구부리고 싶은 것은 시 이영식 애지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1. 봄 시 이시영 유심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90. 풀밭 위의 사과와 시 이순현 시와반시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9. 주름을 따라가다 시 이수지 시와반시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8. 고구마, 고구마들 시 이경림 애지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7. 행복반점에서 자장면 먹는 내 모습 시 윤재철 시와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6.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시 오은 시와사상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5. 고장난 심장 시 안현미 시와세계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4. 연가 시 심재상 문학판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3 뜯지 않은 임영조 시집 시 서지월 애지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2. 그늘이 질 때 시 박주택 시를사랑하는사람들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1. 노인 시 박성우 애지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80. 불이 꺼질 때까지 시 권혁제 시와반시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9. 시월에 시 문태준 시인세계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8. 진시황 시 류인서 시를사랑하는사람들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7. 생각과 소리 시 김정환 파라21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6. 주민등록증을 꺼내다, 아버지가 시 김영섭 시와사상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5. 연의 자취 시 김명리 문학판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4. 음악을 죽인 거리 시 고형렬 불교문예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73. 하늘 우물 시 손택수 시로여는세상 2004년 12월호 선정

72. 우리 동네에선 애기씨 꽃나무라 불렀다 시 홍일선 시로여는세상 2004년 12월호 선정

71. 길에 대한 회상 시 엄원태 시와사람 2004년 12월호 선정

70. 龍門寺 은행나무 시 정완영 문협월간문학 2004년 12월호 선정

69. 산수유 시 유경환 문협월간문학 2004년 12월호 선정

68. 목숨을 걸다 시 박진성 계간 생각과 느낌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67. 물고기 시 조말선 계간 생각과 느낌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66. 소설 시 이규리 계간 생각과 느낌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65. 벽 속의 물고기 시 김형술 시선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64. 얼음 호수 시 박권숙 시조시학 가을호 2004년 10월호 선정

63. 침잠에 대하여 시 이정환 시조시학 가을호 2004년 10월호 선정

62. 몸 -羽化 시 박기섭 시조시학 가을호 2004년 10월호 선정

61. 생심기(生心記) 시 김경미 시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60. 보길도 갯돌 시 이재훈 문학수첩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9. 내 몸을 어느 곳에 시 오정국 문학수첩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8. 어둠을 어둡게 하라 시 이문재 문학수첩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7. 길을 먹어치우는 자벌레 시 김창균 심상 2004년 12월호 선정

56. 아내 시 조영석 시작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5. 쓰러진 나무 시 송수권 시작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4. 스파이더맨 시 하재연 서정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3. 어느 날 시 진은영 서정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2. 불가능한 벽 시 이수명 서정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1. 샤갈의 꿈 시 이선영 서정시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0. 열쇠를 바다에 빠뜨리다 시 유종인 신생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9. 초대장 시 김행숙 신생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8. 하늘 골목 시 장철문 신생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7. 다시 다대항 시 최영철 신생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6. 뚜껑 시 이수명 동서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5. 문장을 읽기 전에는 시 성미정 동서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4. 왼쪽 통증 시 문정영 문학과경계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3. 내 가난한 수요일 아침 시 정윤천 실천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2. 고통의 독재 시 고재종 실천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1. 마야의 해골 시 최승호 문학사상 2004년 12월호 선정

40 .느티, 저 검은 구멍 시 고진하 문학사상 2004년 12월호 선정

39.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시 이성복 문학사상 2004년 11월호 선정

38. 고장 난 자전거 시 권혁웅 문학사상 2004년 11월호 선정

37. 화살 노래 시 문정희 문학사상 2004년 11월호 선정

36. 돌에게는 귀가 많아 시 김선우 문학사상 2004년 10월호 선정

35. 독학자 시 고재종 문학사상 2004년 10월호 선정

34. 나는 오늘 종일 잤다 시 이경림 시안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33. 둑과 나 시 오규원 현대문학 2004년 11월호 선정

32. 그 두 발 시 김신용 작가세계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31. 짐승은 자고 난 흔적을 남긴다 - 人乃天의 뜻 시 이승하 작가세계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30. 장마 시 김사인 작가세계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9. 버드나무 어장 시 신용목 문학과사회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8. 철모 시 이하석 문학과사회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7. 그녀가 사랑한 배관공 시 이영주 창작과비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6. 춤 시 박형준 창작과비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5 .우산 속 남녀 시 조은 창작과비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4. 길의 숲 - 族下 시 백무산 창작과비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3. 빗 속으로 시 최하림 창작과비평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2. 별이 뜰 때 시 이기철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1.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시 이현승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0. 확산 시 이장욱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9. 머리맡에 대하여 시 이정록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8. 바람의 행로 시 조용미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7. 부활하고 또 부활하는 시 이향지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6. 관음(觀音) 시 서정춘 문예중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5. 원서헌의 彫像 시 문인수 한국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4. 손 시 이윤학 한국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3. 마릴린의 치마 시 노춘기 현대시학 2004년 11월호 선정

12. 드므가 있는 풍경 시 김신용 현대시학 2004년 11월호 선정

11. 거미줄에 걸린 빗방울들 시 조용미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선정

10. 아, 비, 정,전 시 박정대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선정

9. 화장터 시 최치언 현대시 2004년 12월호 선정

8. 뮤직 박스 시 이근화 현대시 2004년 11월호 선정

7. 萬年燈 시 김혜영 현대시 2004년 10월호 선정

6. 일몰의 주유소 시 이원 세계의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5. 딱 한 상자 시 이정록 세계의문학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4. 시취(屍臭) 시 이병률 문학동네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3. 나를 잡아 나를 놔 시 신현림 문학동네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2. 소풍 갑시다 시 허수경 문학동네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1. 모딜리아니의 여인의 두상 시 이성복 문학동네 겨울호 2004년 12월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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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제1분기 문예지게재 우수문학작품 선정평(시)

[총평]

우리 시대에 시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자연은 물론 꿈이나 상상조차도 물신화의 촘촘한 그물에 포획되고 시적 초월을 가능하게 해 주는 어떤 위대한 영성도 혁명적 전망도 유토피아도 회의의 쓰디쓴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이 막막한 산문성의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2004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에 걸쳐 각종의 전국 규모 문예지에 발표된 시들 중에서 ‘문학회생프로그램’에 의해 일정액을 지원받게 될 100편의 시를 추려내는 동안 그래도 시가 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90년대 이후 우리 시는 80년대 이전과는 달리 동시대인들의 공동의 꿈, 공동의 기억, 공동의 아픔을 노래하던 전통과도, 세계와 격렬하게 부딪치는 모험적 페르소나들의 행렬과도 확연히 결별했다. 그 자리에는 대신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수많은 아픔과 꿈의 파편들이 시의 옷을 입고 저마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새로움과 진정성--비록 이런 비시적인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덕목을 갖출 때일 것이고 바로 이 덕목이 100편의 시를 뽑는 최소기준이었다. 이 최소덕목에 안주하지 말고 오늘의 한국시가 좀더 크고 좀더 아름답고 좀더 깊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품평]

진은영, <어느 날>, 서정시학 2004년 겨울호
진은영의 「어느 날」은 어느 날 오후의 위태로운 풍경을 색다른 감각으로 표현한 시이다. 감정적인 언사를 절제하면서 시각과 미각, 촉각 등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실험한 점이 새로웠다. 언어 하나하나에 빛살이 가 닿는 듯한 투명함이 느껴졌는데, 그것이야말로 이 시가 성취한 감각적 새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진은영의 시는 익숙한 시의 문법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익숙한 감각을 배반하는 감각적 실험을 통해 상실감과 위태로움, 외로움을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이선영, <샤갈의 꿈>, 서정시학 2004년 겨울호
몽환적인 특성을 보이는 샤갈의 그림을 모티프로 삼은 이 시는 꿈처럼 몽환적인 어법을 빌리고 있지만, 말하려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시인은 눈 뜨고 있는 현실과 눈 감고 있는 꿈(악몽)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악몽 같은지를 넌지시 묻고 있다. 달 아래서 인간이 인간을 해치는 지금, 여기야말로 악몽보다 더 끔찍한 악몽 아니겠냐고 시인은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WSJ 바그다드 특파원으로 가 있던 기자의 글을 시에 고딕체로 삽입함으로써 악몽 같은 현실을 환기한다. “살아가기 위해 늘 눈앞에 놓인 의무와 대결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 악몽은 아닌지, 테러와 혼란, 불행이라는 거인이 장악해버린 현실 속에서 “나를 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생각해 보게 하는 시이다.

이수명, <불가능한 벽>, 서정시학 2004년 겨울호
이수명의 시는 반복적인 표현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미학을 구축해 가고 있는데, 이 시도 예외는 아니다. “벽을 세우고 벽 속에 들어가 벽을 세우고” 하는 일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건조하게 반복되는 언어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수명 시인의 시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시는 시 쓰기에 대한 시로 읽히기도 한다. 일반적인 벽의 이미지와는 다른 “물렁물렁”해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벽”의 이미지는 그가 느끼는 언어에 대한 절망감을 짐작하게 한다. 벽을 세울 수 없다면 세계를 구축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서는 일 또한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이 느낀 절망감을 불가능한 벽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불가능한 벽은 너무 많거나 높은 벽 못지않게 절망적임을 깨닫게 해 주는 시이다.

조용미, <바람의 행로>,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폭풍이 지나간 후에 쓰러져 누운 나무들의 모습을 보고 삶에 대한 욕망과 집착, 생을 다하는 일 등에 대해 사유한 시이다. 쓰러져 폐허를 이룬 나무들이 알려주는 것은 바람의 행로만이 아니다. “심지가 곧은 것들은 저렇게 생을 다해 단 한 번 꺾어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며, 시인을 삶의 미망에서 깨어나게 한다. 쓰러져 폐허가 된 뒤에도 살아남으려는 욕망으로 뿌리의 긴 발톱을 사원의 지붕 위에 박아 넣고 있을 정도로 생에 대한 욕망이 컸지만, 그럼에도 생을 다해 단 한 번 꺾일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에 대해 조용미의 시는 생각해 보게 한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이고 죽음 뒤의 풍경은 삶의 행로를 보여 주는 것임을 시인은 넌지시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현승,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간지럼증이라는 신체에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에서 웃음과 공포와 슬픔과 억압을 발견해 가는 흥미로운 관찰력을 보여주는 시이다. 시인의 말대로 그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참을 수 없는 것이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야 한다고 억누를 때 터져 나오는 폭발력. 그러고 보면 그런 폭발력을 사랑도 웃음도 공포도 슬픔도 간지럼증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감당할 수 없어서 흘러넘치는 것들을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에서 따뜻한 연민이 느껴진다. 웃음으로 치는 보호막을 느낄 수 있는 연인이라면 서로의 외로움을 조금은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이정록, <머리맡에 대하여>,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이정록의 시는 상실감에 대한 시이다. 시인은 ‘머리맡’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면서 앓아누울 때마다, 실연과 불면증에 시달릴 때마다, “식은땀 흘리는 생의 빈 칸마다” 머리맡은 “차가운 물수건”으로 우리를 달래주고 외로움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어지러운 머리맡의 시간을 거쳐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시의 화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연세 드신 아버지가 오래 앓아누워 계신 지금은 바로 우리가 누군가의 머리맡에서 물수건이 되고 기도가 되어야 하는 때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시 속의 화자는 “다음 주에 다음 달에 내년에 내후년에”라고 자꾸 머리맡의 위안이 되어 드릴 시간을 미루고 있다. 일상에 치어서 갚아야 할 시간을 갚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어디 화자만의 일이겠는가? 아마도 화자의 머리맡에는 회한의 시간이 쌓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어지러워지는 머리맡과 함께 저물어가는 것 아니겠냐고 이정록의 시는 말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리와 지금의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시이다.

이장욱, <확산>,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이장욱의 시는 공기의 미세한 떨림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위기로서 느낄 수 있고 따라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령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암묵적인 동의의 분위기 같은 것, 형체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며 퍼져가는 모종의 억압적 분위기 같은 것 말이다. 확산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형체를 지우며 서서히 퍼져 나가 마침내 타자와 하나가 되는 것.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잉크는 한 방울의 형체를 뭉개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마침내 물을 물들여 버린다. 하나가 된 물과 잉크를 분리하기란 어려워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에도 어쩌면 확산의 원리가 되풀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일전 승부차기에 대해” 말하는 순간, “대화의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차이는 지워져 버리고 확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그”는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서로의 존재를 지워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확산을 이루고 서로에게 스며들어도 그들은 “당신”과 “그”일 뿐 ‘우리’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눈물겨”워지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바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 당신과 그는, 피차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에만 공감한다.

김영섭, <주민등록증을 꺼내다, 아버지가>, 시와사상 2004년 겨울호
80년대에는 아버지의 부재를 말하거나 대문자 ‘아버지’를 부정하는 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90년대 이후부터는 아버지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들이 종종 쓰여지기 시작했다. 김영섭의 시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 젊은 날에는 “하반신”을 “꽃다방”에 묻은 채 “계란노른자를 띄운 모닝”을 즐기며 “날마다 뜨거”운 욕망의 나날을 보낸 아버지가 불심검문을 받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신분을 증명하고 믿을 만한 사람임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불심검문은 화자의 무의식 속에서 “불신검문”이 된다.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시대임을, 신뢰를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아버지 자신임을,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슬프고 안타깝지 않느냐고 시인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우리 시대의 초라한 아버지의 초상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시이다.

오은,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시와사상 2004년 겨울호
대중문화가 창궐하는 시대를 맞아 이제 젊은 시인들의 시를 중심으로 대중문화적 상상력은 시에도 적극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오은의 시는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비틀어 보여 준다. 이 시의 문장들은 논리적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벗어나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말도 안 돼 보이는 그런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임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극도에 이르렀지만 “멀쩡하던 빌딩들이 픽픽 쓰러”지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어 흙을 파먹고, 앙상하게 말라 뼈가 드러나지만 배만 볼록 나온 아이들이 여전히 지구상에는 생존해 있다. “맘 놓고 돈 걱정만” 하는 부모의 모습은 그다지 낯설지 않고, 내일을 보고 싶지 않다거나 미치는 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다채로운 색을 흑백으로 나누어 보여주던 폭력적인 시절이 지금, 여기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은의 시는 되묻고 있다.

하재연, <스파이더맨>, 서정시학 2004년 겨울호
손바닥에서 거미줄을 발사하며 도심의 빌딩 사이를 활보하는 정의로운 영웅 스파이더맨 따위는 만화나 영화 속에나 등장할 뿐이다. 시인이 그리는 빌딩의 숲에는 감옥 같은 빌딩에 갇혀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살면서 서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익명의 그들과 접속하는 우리 시대의 스파이더맨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현실에서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이해받지 못하는 아름다움들”이다. “꿈속의 구장”에서 그들은 “머나먼 나라”의 그와 인사를 나누고 공정하게 말을 주고받지만, 그를 잡아두려는 집착이나 미련을 보이지는 않는다. 거대한 빌딩숲의 좁은 공간에서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스파이더맨들은 소통 부재 속에 외로워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류외향, <빈들>, 다층 2004년 겨울호
류외향의 <빈들>은 여름 가을 지나고 겨울 초입에 갈아엎은 들판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앞에 둔 삶에 대해 사색해 보는 시이다. 겨울의 갈아엎은 들판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풍경에 대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화자의 내면의 기록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이 시는 정경교융의 원리를 체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는 버틸 수가 없어서 갈아엎은 들이고, “꺼져가는 숨”을 겨우 붙들고 있는 빈들이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면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빈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제 몸을 풍장시킨 이 들판의 최후의 생각 한 줌”은 지워진 흔적 속에서도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네올 것이다.

김형술, <벽 속의 물고기>, 시선 2004년 겨울호
김형술의 <벽 속의 물고기>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낸 시이다. “올가미에 목을 매단 채 벽에 걸려 있”으면서 “벽을 읽는” “물고기 한 마리”는 시인의 분신이다. “제 태어난 바다”를 떠나 올가미에 목을 매단 채 벽에 걸려있는 존재이지만 물고기는 “팟팟하게 말라가는 눈으로 / 벽 속에 갇힌 말의 냄새들”을 “맡는다”. “새끼줄에 목을 매달고도 눈감지 않는” 물고기의 존재는, 시의 죽음이 공공연히 이야기되는 비시적(非詩的)인 세상에서 여전히 “말 하나의 향기”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거울이 깨어지고 미메시스의 언어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시인은 여전히 “바람”과 “유유자적 흔들리는 시간”을 읽고 또 읽어 비로소 “제 태어난 바다를 벽 속에 불러모”으는 시의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자 하는 눈물겨운 의지를 보여 준다.

이향지, <부활하고 또 부활하는>,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문어는 이미 ‘문어발식 확장’이니 ‘문어 제 다리 잘라 먹기’니 하는 익숙한 관용적인 표현을 동반하는 생물체이다. 이향지의 시는 문어에 대한 익숙한 관념을 넘어서는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이 시에서 문어는 “영원히 죽지 않는 빛뭉치”로 되살아난다. 영원히 죽지 않으며 부활하고 또 부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질김만으로도 끔찍할 것이다. 부활하고 또 부활하는 영원의 이미지를 시인은 신비롭게 그리기보다는 “손을 뻗으면 척척 달라붙을 것 같은 빨판들”의 집요함과 “아우성”으로 다소 공포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이 시에서 보여 주려 한 것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치장되지 않은 영원성의 새로운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김신용, <그 두발>, 작가세계 2004년 겨울호
김신용의 <그 두 발>은 두만강 강둑의 여자 시신과 청계천 고가 밑 지게꾼의 시신을 병치하면서, 북한과 남한의 빈민의 현실을 아우르는 폭넓은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병치의 초점은 각기 풀더미와 가마니 사이로 비집고 나온 시신의 ‘두 발’이다. 죽은 자의 ‘두 발’이 환기하는 생계의 고통과 그 너머에 있는 현실의 구조적 모순, 인간의 최소한의 존재 조건에 대한 쓸쓸한 각성이 점진적인 어조와 그것을 통제하는 절제된 표현 속에 탁월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류인서, <진시황>, 시를사랑하는사람들 2004년 겨울호
류인서의 <진시황>은 진시황 유물전에서 본 순장된 호위병(문관)의 몸 속에서 ‘황제’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다시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객사한 사내와 그 사내의 몸속에서 ‘실업의 황제’를 유출해내는 과정으로 치환하면서 고도의 상징적인 알레고리를 구사한다. 자본의 거리에 순장된 사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황제의 무덤에 순장된 사내에 대한 서정적인 묘사가 자아내는 대비적인 효과도 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박주택, <그늘이 질 때>, 시를사랑하는사람들 2004년 겨울호
박주택의 <그늘이 질 때>는 들끓는 내면의 정황을 풍경으로 번역하고, 그 풍경에 다시 기억과 해석을 덧입히는 솜씨가 뛰어나다. 이런 특징은 시적 언술을 다층적인 의미망을 지닌 하나의 미로로 만들며, 시적 풍경을 상상과 실제가 구분되지 않거나 구분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나아가게 한다. 이 시는 풍경이 시간과 공간, 기억과 고뇌가 복합적으로 직조된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며, 내면처럼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역을 기다림으로 바꾼 저 열린 대문의 눈”에 포착된 마음의 풍경이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울림을 전해준다.

고형렬, <음악을 죽인 거리>, 불교문예 2004년 겨울호
고형렬의 <음악을 죽인 거리>는 (교통) 사고로 인한 한 여자와 아기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화자의 기억 속의 죽음의 현장에서 가장 입체적으로 부각된 것은 ‘음악 상자’이다. ‘음악 상자’는 여자와 아기의 살아 있는 몸의 은유이자 환유의 역할을 하면서 시 전체에 풍부한 울림과 상징성을 공급한다. 음악과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생의 아침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그것을 파괴한 거리(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언술 방식이 탁월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성미정, <문장을 읽기 전에는>, 동서문학 2004년 겨울호
성미정의 <문장을 읽기 전에는>은 글 쓰는 자의 자의식과 언어에 대한 철저한 각성을 주제로 한다. 이 시에서 언어를 다루는 진지한 자세는 장인정신에 가깝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의 가치를 점점 경시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끝없는 참회와 피로’를 감내하며 고독하게 글을 쓰는 자의 내면이 ‘환상교도’라는 독특한 비유와 더불어 절실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수명, <뚜껑>, 동서문학 2004년 겨울호
이수명의 <뚜껑>은 구체적인 시공간을 제거한 실험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현실과 세계에 대한 독특한 문제의식을 발휘하는 ‘이수명 표’ 시의 특징을 잘 압축하고 있다. ‘무엇의’라는 소유격이 전격적으로 생략된 수많은 ‘뚜껑’을 닫고 덮는 알레고리적 정황을 통해 현실의 은폐된 불온성을 암시하면서, 이를 단순하면서도 농축된 표현으로 형상화해 독특한 긴장미를 자아내고 있다.

최치언, <화장터>, 현대시 2004년 12월호
최치언의 <화장터>는 “내가 장작더미 위에 누워 화장을 당하”는 상상적 정황을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신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묘사한다. 이 상상의 화장터는 실은 가난과 고통의 가족사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상상을 실감으로 치환하는 생생한 묘사가 예사롭지 않으며, 장황하게 쏟아지는 말들을 속도감 있게 끌고 나가는 솜씨도 주목을 요한다.

서지월, <뜯지 않은 임영조 시집>, 애지 2004년 겨울호
고 임영조 시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부쳐준 시집을 미처 뜯어보지 못한 부끄러움을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명상으로 바꾸는 ‘치환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집이 들어 있는 누런 봉투를 임영조 시인이 평안히 묻혀 있을 “누른 황토의 산기슭”으로 읽어내는 혜안과 책장에 “꼿꼿이 서 있을 일” 없도록 앞으로도 봉투를 개봉하지 않겠다는 고인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사랑과 세심한 배려가 무리 없이 연결되어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경림, <고구마, 고구마들>, 애지 2004년 겨울호
모든 존재는 시원이란 종요로운 씨앗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시인은 고구마의 “노오란 속살”에서 사물의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뜨거운 용암을 맛본다. 따라서 시인은 고구마 먹는 것을 불덩이를 집어 삼키는 것으로 상상하고는 “장엄한 불의 식사”라 명명한다. 이 시는 강렬한 ‘식욕’을 존재의 본원에 가닿으려는 실존적 탐험의 ‘욕망’으로 치환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박성우, <노인>, 애지 2004년 겨울호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란 하이데거의 명제를 고추를 말리는 노인의 모습에서 포착해 증명하는 시인의 웅숭깊은 시선이 돋보인다. 늦가을 바싹바싹 말라가는 고추의 모습은 생의 습기가 증발된 채 ‘말라가는’ 노인에 대한 시적 알레고리에 다름 아니다. 고단한 삶으로 말미암아 곪아 있을 노인의 속이 텅 비어가면서 울리는 소리, 즉 “헛기침이 바삭거린다”는 표현은 압권이다.

이영식, <내가 구부리고 싶은 것>, 애지 2004년 겨울호
이재무, <아버지>, 시와반시 2004년 겨울호
두 작품 모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일면 진부해기지 쉬운 내용을 다루지만, 그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신선하고 그 테마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은 능숙하다. 이영식의 시가 부권부재의 시대에 ‘아버지 신화’의 복권회복이 갖는 의미(물론 가부장체제의 억압을 뜻하지 않는다)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면, 이재무의 시는 아버지란 이름에 고착된 신화의 이미지(근대화의 주역, 가장이데올로기)를 떼어 내어야만 비로소 우리들 아버지의 맨얼굴을 볼 수 있다고 조용히 역설하고 있다. “천둥번개를 몰고 오던” 아버지의 힘찬 망치질 소리에 대한 그리움이 이영식의 시에 으밀아밀하게 그늘져있다면, “아버지에게서 아버지 너머를 읽지 말아다오”라는 진솔한 고백의 목소리가 이재무의 시에서 들린다.

이수지, <주름을 따라가다>, 시와반시 2004년 겨울호
산문시 형식이지만 오랫동안 농익은 서정의 실뿌리를 시행 곳곳에 드러내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주름의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드러난 어머니의 ‘주름들’과 외바퀴 수레가 땅위에 만들어낸 가느다란 ‘길 자국’, 그리고 ‘비탈길’의 이미지가 한데 포개져 시의 주제를 돋을새김 하고 있다. 이 작품에 깊게 패인 ‘주름’은 고단한 삶의 상흔이자 굽이굽이 걸어 왔을 우리들 어머니의 인생길에 다름 아니다.

이순현, <풀밭 위의 사과와>, 시와반시 2004년 겨울호
서로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동떨어진 이미지가 엇섞이게 배치되어 묘한 시적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풀밭 위에 뒹굴며 썩고 있는 사과의 이미지와 찜질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흥미로운 연상의 축제(태양과 독대하는 사과=욕망을 쬐는 “몸의 오지”, 풀 속에 파묻혀 아랫도리가 짓무르고 있는 사과=음모와 뱃살에 파묻힌 여인의 “남은 씨앗”)가 펼쳐진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다.
오규원, <둑과 나>, 현대문학 2004년 11월호
“길은 바닥에 달라붙어야 몸이 열립니다”라는 길에 대한 깊이 있는 명상과 사색이 요란하지 않은 언어로 담담하게 형상화되어 우리에게 서늘한 인식의 즐거움을 던져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길은 자의식의 투명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단정한’ 욕망의 외화로 읽힌다. 의식(길)이란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무언가를 지향한다는 시인의 깨달음이 자연의 ‘날 이미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권혁제, <불이 꺼질 때까지, 시와반시 2004년 겨울호
한편의 시는 대상과의 뜨거운 만남만으로는 빚어지지 않는다. 냉철한 반성적 성찰이 동반되지 않으면 시는 감성적 미사여구의 수준에 머물 뿐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들불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작(詩作)에 대한 시인의 치열한 고민이 내장되어 있음을 규지할 수 있다. “겉불”과 “속불”이 맞닿는 곳에서 “붉은 파도”를 출렁거리며 들불이 번져가듯, 한편의 시도 뜨거움과 차가움이 격돌하는 지점에서 돛을 올린다는 시인의 통찰이 이 시의 거푸집이다.

조용미, <거미줄에 걸린 빗방울들>,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존재들의 전도된 관계를 구성해놓은 시이다. 방충망에 걸린 물방울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소멸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시인은 그 소멸을 재생의 국면으로 바꾸어 놓는다. 물방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뭉뚱그리며 스며드는 존재이다. 물방울은 방충망에 스밈으로써 녹물이 되어 번져나간다. 물과 방충망의 이 새로운 관계 국면은, 잠자리와 거미의 관계 국면으로 유비되면서 세계 전체의 존재방식을 거꾸로 보도록 하는 의미론적 힘을 획득한다. 시가 기존의 세계 인식을 새것으로 바꾸는 언어행위라는 점에서 이런 인식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안에 값한다.

박정대, <아, 비, 정, 전>,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정전이 씌어지는 음악의 밤”이라고, 시가 씌어지는 순간을 시인은 말한다. 시가 ‘음악-노래’에 상당하는 언어행위라는 점은 이미 오래된 인식이지만, 그 노래의 형상을 언어로 드러낸 시는 많지 않았다. 시인은 시와 음악의 관계를 소재와 주제의 차원에서 동시에 형상화한다. 시적 제재라는 점에서 음악은 소재이지만,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을 언어화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주제이다. ‘아비정전→야자수 정글→필리핀→코끼리→화요일의 기억…등등’의 환유적 과정은 그 자체로 언어의 흐름을 묘사하는데, 음악 또한 흐름의 존재이며, 따라서 시의 언어는 그것 자체로 음악이 되는 것이다. 한국시의 음악적 자의식이 특이하게 형성되는 시이다.

이하석, <철모>, 문학과사회 2004년 겨울호
참새는 날아가고 철모만 남는다. 그것도 계속, 모질게 집착하듯이, 남는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냉정한 묘사로 성가를 이루었던 시인의 특장은 이 시에 이르러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그것의 최종적인 의미론적 종착지가 인간계의 부질없음에 대한 강조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에겐 왜 모든 게 한참 더 기억되나?”라는 진술로써 드러나는 바가 그것이다. 시는 그 관념을 관념으로 표현하지 않고 햇볕과 노래와 전쟁의 피에 유비시켜 표현한다. 이로써 인간의 비극이 더해지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근대적 인간계에 대한 비판이 된다. 이것이 이 시의 풍부함이다.

신용목, <버드나무 어장>, 문학과사회 2004년 겨울호
버드나무 그늘을 물고기떼의 어장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아주 참신하다. 이 참신함은 그러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이미 기존의 시들을 통해서 새로운 언어표현의 능란성을 보여주었던 시인은 거기에 삶을 관조하는 시선의 깊이를 겹쳐놓을 줄 알게 된 듯하다. 참신한 표현은 그 시선의 종착지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그 끝에 어떤 허망이 있음을 시인은 이미 보고 있는데, 그 허망조차도 하나의 소중한 긍정에 디딤돌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시는 표면적 제스쳐로 끝나지 않고 진정성의 울림을 갖는다.

이병률, <시취>,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
시체 썪는 냄새를 뜻하는 시취가 “나를 훑고 있”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상징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의 ‘어떤’ 상태에 대한 극단적 진술이 된다. 시가 재미 있는 것은 그 시취가 단순한 부정적 상태의 형용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건조하고 따뜻하기도 한 것”의 내단이다. 더구나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저리 다 끝낸 땅에 뭔가를 심어대”고 있는 중이다. 시의 힘은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온다. 독자를 항해 활짝 열린 의미의 종결이 그 힘을 가져온다. 격렬한 열림을 통해서 의미가 확장되는 특이한 시이다.

문정영, <왼쪽 통증>, 문학과경계 2004년 겨울호
왼쪽과 오른쪽의 대립이 한국사의 오랜 경간을 통해 심각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은 시인 뿐만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상식에 속할 것이다. 그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 이 시의 과제일 터인데, 물론 그 넘어섬의 과정이 중요할 수박에 없다. 넘어섬 자체는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것을 이념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방식이 이 시의 특징이다. “오른 쪽 옆구리가 넌지시/왼쪽 통증을 껴안아 주었다”는 결론에 반대하는 측이든 찬성하는 측이든, 시 속에서 그 대립을 무화시키는 삶의 생채기를 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시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 대립이 그리움으로 치환될 때 시는 더 멀리 있는 삶의 종착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김신용, <드므가 있는 풍경>, 현대시학 2004년 11월호
지금에 이르러 드므는 전통적인 풍치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변해 버렸지만, 한때 그것은 세계의 모든 것이 비쳐지는 거울이었다. 시는 그 기능을 담당하는 또다른 드므를 만들어낸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비쳐보는 거울로서의 드므가 그것인데, 이것이란 시인에게는 시일 수밖에 없다. <드므가 있는 풍경>은 어떤 경우에도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시인의 시적 자의식을 훌륭히 드러내는 시가 되었다.

노춘기, <마릴린의 치마>, 현대시학 2004년 11월호
시는 기억을 숙주로 삼는 언어구성체이지만, 기억 자체가 언어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시에서는 그보다는 기억 속의 사건이나 사물들이 주로 시적 대상으로 다루어져 왔다. 노춘기의 시는 기억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기억을 사건과 사물로 치환해서 다루는 방식이 특이하다. 다른 시들이 사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면 <마릴린의 치마>는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사물들을 다룬다. 이를테면 거꾸로 된 접근이 여기에 있다. 노춘기 시의 특이점이다.


장철문 <하늘 골목>, 신생 2004년 겨울호
장철문의 <하늘 골목>은 세상의 골목에 놓여 있는 인간의 집을 저 천상의 세계와 연이어 놓는 ‘수직적 상상력’을 토대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그의 수직적 상상력은 ‘이 세상 한번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삶에 대한 긍정의식과 깊이 연관한다. 삶의 고달픔과 괴로움을 초월해서 ‘하늘’에 몇 채의 집을 걸어두고자 하는 열망이 차분한 어조에 의해 잔잔하게 표현되고 있다. 더불어 조용하고 깊은 내적 열망을 시인은 잔잔한 시적 리듬에 의해 안정감 있게 기술하고 있다. 안정감 있는 어조와 리듬 속에서 지상의 삶은 하늘에 걸린 아름다운 집들로 ‘처음인 듯’ 다시 살아난다.

문태준 <시월에>, 시인세계 2004년 겨울호
가을날의 쓸쓸한 詩情은 시인들의 보편적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흔하고 진부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테마이다. 그러나 문태준의 <시월에>는 가을이 환기하는 보편적 정감을 바탕으로 한 존재(화자)의 쓸쓸함을 밀도 있게 드러내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우선 시든 ‘감국화’를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로, ‘시월’을 ‘헐린 제비집 자리’로 비유하는 예사롭지 않은 표현력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시를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요인은 가을의 쓸쓸함을 오로지 ‘풍경묘사’로만 드러내는 구태의연한 형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온 ‘다른 팔’의 허허로운 움직임을 의식하는 순간 이 시는 가을날에 대한 풍경묘사 이상의 것이 된다. 허전하게 텅 빈 생을 찬밥으로 오물오물 씹고 있는 한 존재,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존재의 집이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집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자기인식에 이르는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경림 <나는 오늘 종일 잤다>, 시안 2004년 겨울호
이경림의 <나는 오늘 종일 잤다>는 불길하고 불편하고 불안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이미지들은 모두 시적 자아가 대면하고 있는 삶을 비유한다. 수많은 균열 사이로 하강하는 삶의 무거운 에너지에 대항하는 시적 자아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이 단호한 어조가 하강하는 삶의 무거운 에너지를 대적하고 있다. 이는 곧 시인의 정신력을 반영한다. 고통스러운 삶과 시적 감성이 만날 때 대부분의 시는 감상성에 함몰된다. 감상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미학적 진부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삶에 휘말리고 있는 나약한 정신의 징표일 수 있기 때문에 문제시되는 것이다. 부드러운 서정적 목소리만으로 일관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그 목소리에 스며 있는 강한 내성이 돋보이는 시이다.

최영철 <다시 다대항>, 신생 2004년 겨울호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열망은 우리 시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절박한 현안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는 문학적 주제인 것이다. 그러나 절박함이 크면 클수록 시적 대상과의 미적 거리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할 위험 또한 많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철의 <다시 다대항>은 미적 거리를 적절하게 성취하면서 분단의 아픔을 실감나게 드러낸 작품으로 읽혀진다. 시인은 무릎이 아파 절룩거리는 시적 화자의 고통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물리적인 것(육체적인 것)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쉼표의 분절은 시적 화자의 고통스러운 행보와 숨찬 호흡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술이나 한잔 마시며 북의 처녀나 구경하는 도취의 무드를 이 시적 화자는 벗어나 있다. 여기에는 현실을 쉽게 낙관하지 않는 시인의 냉철한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이시영 <봄>, 유심 2004년 겨울호
이시영의 <봄>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짧은 시이다. 시에서 감정과 말의 절제는 여전히 중요한 미적 요건이다. 그러나 짧은 시라고 해서 절제의 묘가 다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말을 적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긴장감이 없다면 그 시는 함축에 실패한 것이다. 이시영의 <봄>은 말의 양을 최소화함으로써 오히려 울림의 진폭을 최대화하고 있는 시로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묘사되고 있는 ‘오리들의 봄나들이’는 감동적이다. ‘작년 겨울 폭설 속에 무자비하게 파묻혔던 바로 그 따스했던 족속’들의 소생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작년 겨울 폭설 속에 무자비하게 파묻혔던 바로 그 따스했던 족속’들이 어디 오리뿐이겠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현실을 돌파해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옹호가 내재해 있다.

유종인 <열쇠를 바다에 빠뜨리다>, 신생 2004년 겨울호
유종인의 <열쇠를 바다에 빠뜨리다>는 무엇보다 발상의 참신함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자기의 ‘그림자’에 대한 존재확인을 위해 화자는 호주머니의 열쇠를 바닷물에 빠뜨린다. 과연 그 열쇠가 자기의 존재를 열어줄 수 있을까? 열쇠는 깊이깊이 내려가 화자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아픈 숨을 몰아쉰다. 아직 내 손으로 돌아오지 않은 열쇠에 대한 몽상은 닫혀 있는 자기 존재에 대한 몽상과 동일하다. 바닷가에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바다 속에 자기존재가 가라앉아 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망망대해에 갇힌 존재를 구출해야 하는 도정에 있는 것이다. 시인은 ‘살리는 네 肝의 열쇠를 복사해다오’라고 말한다. 이 절실함은 실존을 향해가는 한 존재의 화두이다.

서정춘 <觀音>,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서정춘의 <觀音>은 간명하지만 서럽고 눈물겨운 시이다. 가난을 소재로 한 많은 시가 있었지만 이처럼 울림이 큰 시는 그리 흔치 않다. 배고픔 때문에 얻어맞았던 지난날의 ‘귀싸대기’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설움으로 멍멍한 그 귀를 데리고 살아온 자의 일평생이 잘 보이는 시이다. 이제 그 설움이 ‘허탕치듯 사라져’버릴 수 있는 觀音의 경지를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시는 ‘귀싸대기’의 아픔을 끝끝내 쟁쟁쟁 울려준다.

김창균 <길을 먹어치우는 자벌레>, 시안 2004년 겨울호
김창균의 <길을 먹어치우는 자벌레>는 하루종일 뽕나무를 먹어치우고 있는 자벌레를 인간존재의 삶과 동일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보이는 자기의 집과 길과 밥을 끊임없이 먹는 과정은 곧 존재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비 과정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를 하나의 자연물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사유의 대상으로 부각시킨다. 여기에는 존재에 대한 허무의 심연이 담겨 있다. 이때 인생이나 허무에 대한 감상적 태도를 가급적 자제함으로써 존재의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시인의 태도를 읽게 되는데, 이와 같은 태도가 독자를 진지한 사유의 세계로 유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안현미 <고장난 심장>, 시와 세계 2004년 겨울호
안현미의 <고장난 심장>은 가난과 소외로 상처받은 한 여자의 삶의 비극성을 참신한 비유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여자의 내면에 박혀 있는 딱딱한 눈물은 고장난 생의 시간, 고장난 존재의 심장을 의미한다. 이 고통스러운 생의 시간을 캐내고 싶은 화자의 욕망 속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이때 이 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비유들은 절박한 생의 고통을 구체화함으로써 소외받은 자의 삶에 독자가 공감하도록 이끈다.

김경미 <생심기(生心記)>, 시평 2004년 겨울호
김경미의 <생심기(生心記)>는 ‘마음’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심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시이다. 대립과 갈등, 혼인, 불화가 갈마드는 이 마음의 자리를 시인은 ‘헛됨’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마음을 낳고, 마음이 마음의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시간이 곧 존재의 시간이라면 존재는 결코 마음의 갈마듦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소진하게 될 것이다. 生心에서 終心에 이르는 이 부질없는 생의 과정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라고 이 시는 묻고 있다. 이 시는 다소 관념적이지만 형이상학적 주제를 실험하고 있다는 면에서 남다른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유경환, <가로눕는 바람>, 월간문학 2004년 11월호
이 작품은 오랜 기억 속에 있는 사물과 사람, 생각과 느낌들을 단정한 시상 속에 담은 가편(佳篇)이다. 가령 시인은 마을에 풀꽃이 피면 그것이 귀신의 휘파람 소리 때문이라는 이야기나, 할머니 말씀에 담긴 귀신 이야기를 거듭 되새기면서, 속신(俗信)이 반영되어 있었던 한 시절을 시 안으로 되불러낸다. 그래서 지금 눈앞을 스치는 “가로눕는 바람”이 바로 귀신 그 자체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규리, <소설>, 생각과느낌 2004년 겨울호
이 작품은 “벌깨덩굴”의 속성과 외관에서 유추되는 생의 어떤 이법(理法)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싹 말라 있고, 한 몸이 되어 서로를 감고 있고, 미워하면서도 한 몸을 이루는 우리들 장삼이사의 삶을 닮았다. 그 마지막 고요 속에서 시인은 “한 인연이 살다가 저렇게 가도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대척적임 힘들 이를테면 미움과 사랑, 자유와 구속 같은 것이 덩굴처럼 얽혀 있음을 강한 실감으로 전달하고 있다.

박진성, <목숨을 걸다>, 생각과느낌 2004년 겨울호
이 작품은 스스로의 몸이 지령하는 움직임에 의해 상처를 입은 시인이, 병원에서 겪은 힘겨운 상황들을 전경(前景)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몸 속으로 전해져오는 미세하고도 확연한 떨림을 담고 있다. 질병이 시적 동기이자 대상 자체이기도 한 박진성의 시는 그래서 “목숨을 걸고” 쓴 시이다. 그 놀라운 핍진성과 실감이 시의 논리를 압도하면서, 우리들 삶을 은유적으로 되살피게 하는 강한 힘이 느껴지는 시편이라 할 것이다.

조말선, <물고기>, 생각과느낌 2004년 겨울호
이 작품은 “물을 잃은 물고기”와 가족 사진에 담겨 있는 모델들을 유추함으로써 우리 일상의 비루함과 권태를 보여주고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들의 연속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전언을 함축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우리가 잡은 물고기가 실은 우리들 자신임을 참신한 역설과 건조한 묘법(描法)으로 전달하고 있다.

박기섭, <몸 - 羽化>, 시조시학 2004년 하반기(시조)
이 시조 작품은 비교적 자유롭고 힘찬 율격 속에, 우화(羽化)를 꿈꾸는 벌레를 화자로 하여, ‘몸’의 가벼워지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나’와 ‘너’의 관계를 ‘배추벌레/배추’의 관계로 설정하여 몸의 상호 의존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네 몸을 다 갉아먹고 푸른 즙의 덩어리로 대궁이를 움켜쥔 채 마지막 우화를 꿈꾸는” 가벼운 몸으로 집약되고 있다. 그 가벼움에 독자들도 한결 가벼워진다.

이정환, <침잠에 대하여>, 시조시학 2004년 하반기(시조)
이 시조 작품은 루이스 캐럴이라는 영국 작가의 삶을 빌어와, 그가 추구했던 침잠의 삶을 시인 나름의 재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가령 침잠의 삶은 “그늘진 골짜기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밑바닥에서는 무언가 들끓고 있”는 역동적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침잠의 삶이 가지는 역동성과 무거움 그리고 팽팽한 긴장까지 아우르면서 우리가 결핍한 채로 살고 있는 어떤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권숙, <얼음 호수>, 시조시학 2004년 하반기(시조)
이 시조 작품은 “얼음 호수”가 가질 법한 날카롭고 차가운 이미지를 이용하여, 정신이 벼려져 있는 어떤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가령 시인은 “굴신의 생애 끝에 회초리를 꺾는 숲”에서 “거울에 베인 꿈”을 읽고는 “가슴속 품고 벼려온 모든 칼”을 거기서 유추해낸다. 시적 이미지들은 서로서로 연결되면서도 각자 독자적인 강렬함을 뿜으면서 꿈과 영혼의 상처와 기억 그리고 가볍지 않은 결의를 느끼게 하고 있다.

정완영, <용문사 은행나무>, 월간문학 2004년 12월호(시조)
이 시조 작품은 늦가을의 한 사찰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시적 대상으로 하여, 나무의 외관과 그 안에 담긴 시간들을 묘사하고 있다. 가령 시인은 서리가 내린 은행나무 가지를 “서리 묻은 옷자락”으로, 그리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무너진 종소리” 혹은 “벗어내린 가사섶”으로 등가화함으로써 실은 ‘나무’가 신성 그 자체의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단아한 시상에 담긴 완결성 높은 시세계가 돋보인다.

김사인, <장마>, 작가세계 2004년 겨울호
삶의 고적함과 적막감이 물씬 묻어나는 시이다. 장황하게 풀어내는 요설에 우리네 삶이 대책 없이 휘둘릴 때 이 시는 그 삶의 정수리로 우리를 깊숙이 들어서게 한다. 먹먹한 혹은 심심한 삶의 허기. 이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허기의 견딤에 있다.

이근화, <뮤직박스>, 현대시 2004년 11월호
우리가 듣는 음악을 기계들의 무의식으로 치환하여 그것을 후레쉬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가장 부드럽고 유연한 음악의 속성과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들의 속성이 만나 빚어내는 하모니가 바로 ‘뮤직박스’인 것이다. 시인의 무의식 속에 영혼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기철, <별이 뜰 때>,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별이 뜰 때의 풍경의 소소함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소란스러움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훌륭한 시인이란 명멸하는 시간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다시 우리 앞에 드러내 보이는 능력을 가진 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는 주목에 값한다. 나직이 풀어놓는 별이 뜰 때의 시인의 체험이 환하지만 눈부시지 않게 다가와 안긴다. 질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이다.

이성복,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문학사상 2004년 11월호
시인에게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특별한 대상이 된 것은 구멍 때문이다. 시인에게 구멍은 엄청난 메타포를 제공해 주는 대상이다. 구멍은 그 자체가 욕망이다. 시인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게서 발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쾌락을 마시고 무명을 배설하는 존재, 퍼질러 앉은 유방이 권투장갑 같은 존재, 이것이 바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인 것이다. 욕망하는 기계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승하, <짐승은 자고 난 흔적을 남긴다>, 작가세계 2004년 겨울호
아이의 몸을 통해 인내천의 의미를 읽어내는 시인의 상상력이 끌린다. 이 끌림이란 미학적인 차원의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 아이에 대한 공경과 모심의 감각을 보여준 시인의 태도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시적 감동이 단순한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과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짐승은 자고 난 흔적을 남기듯 이 시는 우리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따뜻한 정의 흔적을 남긴다.

진은영, <집시의 시간>, 파라21 2004년 겨울호
- 그녀의 시는 집시의 시간 속에 있다. 그만큼 도발적이고 또 위험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 매너리즘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 시단에 그녀의 시는 분명 후레쉬함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이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시에 그것이 하나의 메타포로 드러나 있다. ‘검고 뾰족한 모자를 쓴 여자’가 바로 그것 아닐까? ‘검고 뾰족한 모자’란 시적 상상력의 예각화가 아닌가. 이 예각적인 것이 무디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혜영, <만년등>, 현대시 2004년 10월호
시간의 고고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이다. 이 시의 상상력의 연원은 장군총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저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서면 뒷골목까지 이어진다. 고구려 전사들의 숨결이 시인의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되면서 시적 활기가 넘쳐흐른다. 특히 고대와 현대의 대비가 둥둥둥 북소리를 매개로 융화되는 과정은 억지스러움이라든가 과장됨 없이 자연스럽다. 시간과 공간의 매개를 통한 이 정도의 상상력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행숙, <초대장>, 신생 2004년 겨울호
이 시의 매력은 언어들의 재기발랄한 결합에 있다. 재기발랄한 결합으로 인해 그의 시는 꽉 짜여진 그래서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시와는 다른 효과를 창출한다. 그녀의 시의 여기저기에서 드러나는 틈은 그것이 시적 밀도의 허술함으로 전경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특장으로 드러난다. 그 결과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후레쉬한 느낌을 준다. 그녀의 재기발랄함이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미적 원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허만하, <강의 계절>, 파라21 2004년 겨울호
허만하의 언어는 긍정적 의미에서 남성적 기질과 대륙적 풍모를 늘 띠고 있어 놀랍다. 그래서 그의 시를 보면, 이육사의 시가 곧잘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강의 계절> 역시 단순한 어느 사막에 사는 몽고족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을 빌린 삶과 죽음의 절대성과 초역사성에 대한 경이와 외경을 담은 시다.

최하림, <빗속으로>,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이제 최하림의 풍경과 일상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만큼 서로는 전경인 동시에 후경으로서 의미를 가질 만큼 독립적이면서 동시적이다. 가령 시인은 “차는 속도를 내어 달렸다 물과 산개구리들은 차보다 빠르게, 차 앞에서, 뒤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아(차)의 관점이 아니라면 엄연한 사실이다. 맹목을 버리면(“눈을 감고 싶은 사방이 캄캄한 밤”) 안 보이던 타자(의 풍경)가 보인다.

김정환, <생각과 소리>, 파라21 2004년 겨울호
김정환의 시는 가끔 ‘느닷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데가 있다. <생각과 소리> 역시 ‘느닷없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를 써나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그의 시를 느슨하게 읽어가다 가도 독자의 머리에 왕왕 “못질 ‘소리’”를 들리게 하는 이유이리라. 아마 의식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김정환의 “느닷없는 망치 소리”를 좀더 자주 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장옥관,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장옥관의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는 어느 사연 많은 늙은 비구니의 일생을 달과 뱀의 이야기를 통해 맵시 있게 담아 내고 있다. 옛 전설의 현대적 변용이기 십상일 이야기를 전혀 그런 기미 없이 새롭게 창작해내는 상상력이 압권이다. 특히 마지막 연의 스님과 달과 뱀을 동일화시키는 반전의 돌연성이 더욱 그렇다.

백무산, <길의 숲>,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백무산의 <길의 숲>은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길’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깨달음’의 시적 번역에 바쁜 시들은 정서의 울림은 없고 각성의 촉구만이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백무산의 시가 이런 우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각성과 성찰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향해 있다. 그런 진정성은 적어도 타인을 강제하거나 억압하지는 않는다.

고재종, <고통의 독재>, 실천문학 2004년 겨울호
최근 고재종 시는 적지 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유유자적한 농촌 풍경의 묘사에서 삶과 죽음과 같은 존재 근원의 문제로 시적 관심을 옮기고 있다. <고통의 독재> 역시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들이 그가 사는 농촌의 ‘변두리 삶’들이란 점에서 그 변화는 구체적이며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다. 아마도 이런 작업이 계속되면, 이후 세대에게서는 보기 힘들 ‘민중생활약전’의 결실로 맺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박형준, <춤>,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박형준에게 <춤>이란 시는, 어린 송골매가 그런 것처럼 “첫 비행이 죽음이 될 수 있으나” “절벽의 꽃을 따는 것으로 비행연습을 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처럼 읽힌다. 그만큼 이 시 한 편에 어떤 변화의 의지와 모색이 엿보인다는 말이다. 문제는 ‘고독’과 그것의 대체물이자 보상물들일 ‘꽃’ ‘꽃물’ ‘꽃파도’ 등의 구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말하자면, 가장 강하면서 부드러운 말들의 춤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영주, <그녀가 사랑한 배관공>,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이영주의 <그녀가 사랑한 배관공>은 꽤나 독특한 상상력과 표현을 얻고 있다. 사랑과 이별의 기억(추억)을 몸 속의 혈관, 즉 오래된 배수관에 비유함으로써 참신함은 물론 생생한 물질성 확보에 성공한다. 시가 젊다는 것은 이처럼 세계를 새로 보려는 태도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경험의 특수성 여부와는 커다란 관련이 없다.

조영석, <아내>, 시작 2004년 겨울호
조영석의 <아내>는 ‘나무’와 그것의 하루를 빌어 ‘아내’와의 일상생활을 그리고 있는 시다. 제목이 아니라면, 도서관에서 밤낮을 보내는 책벌레 이야기쯤으로 읽힐법한 시다. 하지만 아내의 ‘나무’로의 설정이 자아의 일상사와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를 동시에 진술하는 데 성공케 하고 있다. 젊은 시인에게서 이런 기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황병승, <에로틱파괴어린 빌리지의 겨울>, 파라21 2004년 겨울호
황병승의 상상력은 어떤 면에서는 종 잡을 수 없다. 대체로 그의 시들이 수많은 대중문화 텍스트의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 그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의 장점은 자기 시의 원류가 되는 문화에의 매혹과 부정이라는 이중성에 쉽게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희 정신에 충실함으로써 그것들을 비판하는 역설의 정신에 철저하다. 그래서 그의 건강하고 뒤틀림이 없다.

송수권, <쓰러진 나무>, 시작 2004년 겨울호
삶도 그렇지만, 시에서도 연륜은 지혜이자 힘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언어는 훨씬 강한 진정성을 얻는다. 그가 무심한 듯 내뱉는 “너의 연민이 안쓰러움이고 사랑일 수 없다”는 말이 절절한 울림을 얻는 것은 무엇보다 “오랜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의 진술은 때로는 그 느슨함을 피하기 위해 신비주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다. “쓰러진 나무에서 이상한 향기가 난다”가 그런 경우다.

정윤천, <내 가난한 수요일 아침>, 실천문학 2004년 겨울호
자연의 순환은 영원과 지속의 감각을 실감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인간의 기억이 자연의 시공간에 곧잘 의지하거나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윤천 역시 ‘목백일홍’을 보며 고인이 되신 생전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밋밋했을 시에 긴장을 준 부분은 역시 “마음으로 성가”신 “꽃잎들”을 “화안하도록 오래 서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꾸어낼 줄 정서적 감응력, 곧 자신의 미묘한 정서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계산하고 포착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조은, <우산 속 남녀>,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조은의 최근 시는 부쩍 사랑과 생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고 따뜻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우리 삶에 관한 모든 것과 관련하여 어떤 과장도 축소도 없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만큼의 공감의 언어를 직조할 따름이다. <우산 속 남녀>는 최근에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랑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신현림, <나를 잡아 나를 >,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
신현림, <나를 잡아 나를 >는 나를 잡아와 나를 놔라는 서로 상반되는 마음의 진동을 슬프고 고통스럽고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락에 실어 노래해내고 있다. 역동적인 시적 율격과 더불어 "괜찮은 무덤", "편안한 수갑" 등의 표현이 "감정의 시소"를 더욱 생동감 있게 펼쳐내고 있다.



엄원태, <길에 대한 회상>, 시와사람 2004년 12월호
엄원태, <길에 대한 회상>은 어둡고 아프고 처절하다. "검고 푸른게 너의 고통이라면/온몸으로 떠안으며 거기로 가고 갈 수밖에". 그렇다면, "거기"란 어디인가? "추운 돋을새김"과 지척에 "죽음"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정황을 방만한 슬픔으로 분출시키지 않고 "화양연화"의 끊길듯, 이어지던 음악과 화면을 통해 투사시킴으로써 너무도 내밀하면서도 절도 있고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있다.

조윤희, <길 위에서 낯선 열쇠를 보다, 시와시학 2004년 겨울호
조윤희, <길 위에서 낯선 열쇠를 보다>는 낯선 열쇠의 기억의 서사를 묘사하고 있다. 열쇠란 깊숙이 닫힌 비밀들을 열어내는 마법의 도구이다. 그렇다면, 가슴 뛰는 "낯선 사랑의 문도 열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의 이러한 질문은 천진한면서도 산뜻하고 참신하다.

허수경, <소풍갑시다>,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
허수경, <소풍갑시다>는 속도의 시이다. 그리고 이 속도는 현실을 어느새 주술적인 서사로 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현실과 신화,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이 서로 깊숙이 엇섞여서 한몸을 이루어 내고 있다. 이로 인해 시적 삶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고 그로인해 슬픔도 더 커지고 있다. 낯선 풍경을 너무도 익숙한 풍경으로 만들어내는 마법의 속도의 성공적인 결과이다.

이성복, <모딜리아니의 여인의 두상>,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
이성복, <모딜리아니의 여인의 두상>은 명화 모딜리아니에 대한 감상적인 묘사이다. 그녀의 표정에서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 삶의 고통에 대한 묘사가 무겁고 칙칙한 관습적 표현과는 분명 다르다. "넌 열이 날 때 밤이 좋니, 낮이 좋니?"라는 표현은 모딜리아니 여인의 두상의 어린아이처럼 맑고 신비로운 섬세한 라인을 잘 살려내고 있다.

이재무, <解産>, 시와시학 2004년 겨울호
이재무, <解産>은 "늦은 밤 산속 임자 없는 밤나무들", "도토리나무" 등의 "아람 벌어져 떨어지는 다 여문 열매들" 의 장관을, 그 자연의 한바탕 잔치 마당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끙"하고 "돌아눕는 산", "불콰한 달빛", "숲 속"의 "환한 소리"등은 대자연의 풍요로움과 장엄함을 한꺼번에 생생하게 보여준다.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머리를 온통 시원하게 식혀주는 싱그러운 우주의 화음이며 청량제이다.

이재훈, <보길도 갯돌>, 문학수첩 2004년 겨울호
이재훈, <보길도 갯돌>은 돌의 기억의 서사를 노래하고 있다. "보길도 갯돌"들은 제각기 자기만의 사연을 안고 있는 "딱딱해진 연보"이다. "네 기억이 드문드문 찾아오게 되면/모든 사물은 굳은 껍질로" 다시 닫힌다. 기억들은 보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너무도 아픈 흔적들인 까닭이리라. 어디 보길도 갯돌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돌들이 그러할 것이며 또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오정국, <내몸을 어느 곳에>, 문학수첩 2004년 겨울호
오정국, <내몸을 어느 곳에>는 소통부재의 대상과 연결 통로를 열기 위한 안타까운 시도가 그려지고 있다. "바다 너머에도 바다가 있다는 듯/배가 오"는 데, "너"는 철문처럼 굳게 닫혀있기만 하다. "내 몸을 너의 어느 곳에 밀어 넣어야 "너의 문은 열리겠느냐. 물론 너와의 관계가 처음부터 소통부재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시적 화자도, 독자들도 그점은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소통 단절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문재, <어둠을 어둡게 하라>, 문학수첩 2004년 겨울호
이문재, <어둠을 어둡게 하라>는 "어둠 보호 지대를 조성해야 한다"는 구호를 내건 일종의 문명 비판시이다. 그동안 우리들에게 어둠은 밝음과 대조되는 야만적인 두려움의 대상으로 규정되어왔다. 그래서 어둠을 정복하고 추방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이고 승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어둠을 추방하는 것이 신을 추방하고 인간을 추방하는 일이다. 그런 탓에 이를 알고 있는 시인으로서는 "어둠 보호 지대를 조성해야 한다"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윤재철, <행복반점에서 자장면 먹는 내 모습>, 시와시학 2004년 겨울호
윤재철, <행복반점에서 자장면 먹는 내 모습>은 "햇빛 환한 가을날 점심시간" 무렵의 자신의 초상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자장면을 씹고 있는","비쩍 마른 중년의 사내"에 대한 측은함과 가엾은 느낌이 든다. 자신에 대한 측은함을 스스로 견딜 수 없어 중국집을 나서고 만다. 그런데 길을 걸어가는 나의 모습은 어떤가? 마치 "골목길 여기저기에 몸을 숨기며" 따라오는 "스파이"같지 않은가? 시인이 느끼는 어느새 중년이 된 자신의 초상,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중년들의 초상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이 시는 잔잔한 공감의 파문을 길게 늘어뜨린다.

심재상, <연가 -립싱크 랩소디 18>, 문학판 2004년 겨울호
심재상, <연가 -립싱크 랩소디 18>은 바다의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의 파도를 흥미 있게 노래하고 있다. 출렁이고 부서지는 바다 물결을 따라 내 마음의 격정과 추억도 출렁이고 부서지고 있다. "침묵처럼 비명처럼/안으로 파고드는 헛울음처럼" 출렁이는 내 마음의 그 무엇들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묻는 것은 어리석다. 삶이 다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못견뎌 하면서도 눈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05년 제1분기 문예지 게재 우수문학작품 선정평(소설)


[총평]

스무 편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폭력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진술이 돋보인 원로의 작품에서 원숙함을 더해가는 중견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참신한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신인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골고루 포함되어있다.
특징적인 점을 지적하자면 젊은 작가들의 여릿한 서사에서 보이는 세대적 맥락이라 하겠다. 불투명한 삶에 대해 단독자적인 시선과 행동으로 맞서는 그들의 방법론은 투명한 적들에 대해 뚜렷한 시선으로 격투했던 앞선 세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그 불투명함이야말로 젊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확보하는 통로이며 우리 시대 문학이 다채롭게 꽃 필 수 있는 가능성이다. 불투명한 삶에 대해 필사적으로 그러나 독자의 정신으로 맞서나가는 이들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앞선 세대가 확보했던 우리 문학의 수준을 다시 새로운 단계로 고양시키는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음 분기에도 다양한 작품들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작품평]

정이현, <위험한 독신녀>, 문학동네 겨울호
애증의 도착(倒錯)을 시간의 도착으로 구상화한 서사 구성이 낯익으면서도 흥미롭다. 심리적 깊이를 제거하고 인물의 표면 요소를 주로 서술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주제의 심도를 획득하고 있다. 클리셰가 될 수 있는 소재와 인물 등을 청량한 감각과 문장으로 재처리함으로써 ‘소설적 반복’의 우려를 돌파하는 한 가지 방식을 예시하고 있다.

정미경, <무화과나무 아래>, 현대문학 10월호
과거와 현재, 현실과 내면 등을 교차시키면서 실존의 지평을 심화, 확대하는 작가의 눈이 진지하다. 전장(戰場)과 일상을 훑는 카메라 렌즈의 표피성과 내적 성찰의 깊이를 융합시킨 문체의 울림도 크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 화두를 동시대의 세계사적 혼돈 속에 투사하여 얻어낸 소설적 응답이다.

김영하, <은하철도 999>, 문학사상 10월호
단편 <은하철도 999>는 ‘소설적 간지러움’에 대한 작품이다. 그를 위해서 작가는 일상적 삶에 잠재된 다양성들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 주변에 절묘하게 배치하는 솜씨를 보여준다. 강남역 부근에서 우주정거장 체류 희망자 모집 광고를 발견한 주인공이, 이러저러한 사건을 경험하고 모집버스에 올라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봐두어야 할 대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계가 기호와 이미지들로 구성된 은하(galaxy)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기호와 이미지로 구성된 은하를 여행하는 유목민(nomad)이라는 점이다. 소설적인 간지러움은 인간이 세계의 기호-이미지와 접촉하고 소통하고 충돌할 때 생겨난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철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은하계를 여행하듯이, 소설은 인간과 세계를 감싸고 있는 기호-이미지의 은하를 여행하는 일에 해당한다. 전복적이면서도 유희적인 상상력이 정제된 구성과 문체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엄창석, <호랑이 무늬>, 동서문학 겨울호
단편 <호랑이 무늬>는 ‘일상의 해부학’을 유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산에서 잡은 뱀을 장난삼아 집으로 가져왔는데, 놀랍게도 뱀이 탈출해서 집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 뱀이 독사인지, 어디에 숨었는지, 가족 중에 누가 물리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의 불확실성은 공포를 증폭시키고 일상은 막연한 위험에 휩싸인다. 뱀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구성하고 있던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심리적 안정을 제공해 주었던 요소들이 벗겨져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에 숨어버린 뱀 한 마리는 우리의 일상을 해부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현미경(또는 X-레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추적하는 문체와 구성이 매우 치밀하며, 일상의 토대들을 살피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한국문학 겨울호
자기 연민 없이 아버지 없는 가난한 삶의 고통을 발랄하게 받아넘기는 주인공의 삶의 태도를 경쾌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달아난 아버지를 환상 속에서 전세계를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꾸어놓는 기발한 설정이 참신한 어법과 감수성으로 그려진 수작이다.

신경숙, <어두워진 후에>, 문학동네 겨울호
어둡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사내를 치유의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조건 없는 모성적 거둠이라는 테마를 안정적인 구성과 문체로 그리고 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일 수 있는 테마를 다듬어 남다른 품격을 갖춘 일화로 구성해놓는 솜씨가 탁월하다.

윤대녕, <탱자>, 문학과사회 겨울호
윤대녕 소설 특유의 심미적이고 단아한 문체가 돋보이는 <탱자>는 근친의 죽음 속에 숨겨진 사랑의 비밀을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소설은 폐암선고를 받은 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고모의 행적을 차분하게 기록해간다. 탱자가 익을 무렵 다시 찾아오겠다는 옛 연인은 고모의 순정을 저버리고 되돌아가며, 고모는 그가 남긴 탱자의 추억과 한을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하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며 고모가 부르는 <물새 우는 강 언덕>과 어둠 속 배추밭에서 들려오는 고모의 울음소리는 삶이 지닌 비의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슴 짠한 장면이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들여다보는 기품있고 시적인 묘사들로 가득찬 <탱자>야말로 이 계절의 수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박병례, <천수만>, 작가 겨울호
박병례의 <천수만>은 소외된 존재들 사이에 싹트는 따뜻한 공감과 유대를 잔잔하게 그려나간 작품이다. 어느 마을 허름한 미장원에 나이든 뚱뚱이 미용사와 트럭만 보면 정신없이 뛰쳐나가는 젊은 미용사가 함께 살고 있다. 혈육을 잃은 아픈 사연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고부사이이지만 자매에 더 가까운 끈끈하고 애정적인 유대를 보여준다. 오갈 데 없는 그녀들이 맺는 인간적 유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상처투성의 삶을 위로하고 달랜다. 특히 눈발이 날리는 날, 천수만에 새를 보러 떠나는 두 여자의 모습을 그린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강영숙, <갈색 눈물방울>, 문학과사회 겨울호
<갈색 눈물방울> 역시 강영숙 소설 특유의 비루한 공간과 그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소설의 무대는 도심 한가운데 버려진 낡은 이층 빌라. 실연의 후유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나’는 죽은 엄마가 남긴 유산인 이 낡은 빌라에서 살게 된다. 거기에는 동남아 출신의 세 남녀가 있으며 중풍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할머니와 그의 남편이 함께 기거하고 있다. 버려진 빌라처럼 이들 또한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존재들인 것이다. 강영숙 소설은 그러나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풍경의 묘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이처럼 버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을 그 특유의 방식으로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의 존재 이유를 지속적으로 묻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여자의 통증에 대한 관심이 ‘나’의 실어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리하여 강영숙 소설의 기본 구도라 할 미추의 역설적 변증법은 낡은 이층 빌라를 도심 속의 사원으로 변화시키는 비약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 비루한 것을 향한 그의 지속적인 탐색은 이러한 반전을 상투적인 희망으로 귀결되는 결론과 구별시켜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중혁, <무용지물 박물관>, 한국문학 겨울호
<무용지물 박물관>은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하던 ‘나’가 그곳에서 나와 조그만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나’가 차린 회사의 이름은 ‘레스몰(LesSmall) 디자인’. 작고, 적은 디자인이 곧 이 회사의 모토이다. 어느 날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의 프로듀서(메이비)가 회사를 찾아와 라디오의 디자인을 의뢰한다. 안테나 모양의 이 라디오가 크게 성공했고 그것을 계기로 ‘나’의 사업은 크게 성장한다. 그러던 중 메이비가 다시 찾아온다. 이번에는 그가 자원봉사로 진행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의 의뢰이다. ‘나’는 메이비가 하는 방송을 듣게 되고 결국 디자인을 포기한다. 왜 그런가?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의 주제가 놓여 있다. 메이비의 방송 ‘무용지물 박물관’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을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용하지만 절대 썩지 않는 디자인이기에, 자위행위와 구분되지 않는 예술과 시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상품의 경계를 초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용지물 박물관’은 ‘사이버 타자기 박물관’(<회색 괴물>, 파라21 2004년 겨울호)과 ‘자전거 박물관’(<바나나 주식회사>, 문학과사회 2003년 겨울호)에 이어져 있다. 이 추구의 방향에서 김중혁 소설은 자기 영토를 발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성란, <임종>, 파라21 겨울호
따뜻하다. 하성란은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낮추고 눅여서 “아, 야가 갸가?” “새이야, 갸가 왔었다 카드라.” 하는 사투리의 잡답(雜沓) 사이로 들어간다. 거기에 가족사의 추문과 비밀이 증폭될 자리는 없다. 그것들은 생의 경건한 질서, 한 육신이 소멸하는 자리로 모여들어 조용히 그 육신과 함께 사라진다. 굳이 어떤 느꺼움을 재촉하지 않으면서. 스타일의 이완과 혼합이 하성란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편혜영, <시체들>, 한국문학 겨울호
이상하다. 시체가 갈갈이 찢겨 계곡을 떠돌고, 썩은 생선의 눈알을 삼키는데도 엽기는 없다. 살갗이 벗겨지고 몸의 곳곳이 찢기고 뜯겨나가는 가운데 밤의 계곡이 내는 소리를 듣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그 죽어가는 몸 위로 쏟아지는 하얀 구더기들의 비와 함께 아름답다. 타자(他者)의 자리로 간다는 것은, 마침내 이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 사랑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이처럼 불가능한 정경, 환상 아닌 참을 수 없는 실재 속에 겨우 있으리라.

성석제,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 문학수첩 겨울호
성석제 특유의 구수한 입담은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대상을 서사화시키는 마술적 힘을 발휘한다. 옛날식 다방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영빈다방을 찾은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비루한 세상살이 이야기, 영빈루란 중국음식점에서 넙춘이란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이렇고저런 이야기, 결혼한 딸 자식을 먹이기 위해 김치 보퉁이를 애지중지하는 노인의 심회 등 ‘어느 하루 환환 한때’ 우리들 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서사화한다. 바로 이것이 삶 내음이 나는 특별할 게 없는, 아니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성석제식 소설이다.

손홍규, <장마, 정읍에서>, 문예중앙 겨울호
손홍규의 소설은 환경미화원의 삶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시청에서 환경미화원을 민간업체에 위탁관리하기로 결정한 이후 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되면서 이에 항의하는 노조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한 가장의 내명 풍경, 새벽 뺑소니 차에 치여 병원 응급실로 아들이 실려갔다는 소식을 접한 환경미화원의 비참한 심정 등 환경미화원의 일상은 “고양이의 아가리 같은 캄캄한 세상으로 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 삶은 우리들의 평범한 삶인지도 모를 일이다.

구자명, <누가 처용의 비늘을 보았는가>, 문학나무 겨울호
능청스런 학생의 리포트(혹은 처용설화 소재 소설)로 인해 골탕먹는 교수의 이야기다. 고전 설화를 매개로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현재형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일종의 메타소설이다. 탄탄한 문장과 짜임새있는 구성 및 반전은 근래 보기드물게 정통적인 소설문법이어서 의미있다. 격조와 재미를 함께 갖추었을 뿐 아니라, 소설 쓰기에 대한 작가적 고민과 자의식이 남달라 보이는 소설이다.

오수연, <꽃비>, 문학동네 겨울호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일상들마저 가학과 피학의 관계로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르포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소설 형식을 통해 미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고, 구체적 시공간을 지우면서도 한편으로 구체적 사건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편재한 폭력의 문제에 관해 보편과 특수 모두를 아우른 점이 돋보인다.

김유진, <빛의 이주민들>, 한국문학 겨울호
김유진의 「빛의 이주민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근대적 불안’이다. 무너지고 있는, 그리고 항상 무너질 것만 같은 고층 건물들, 흔하게 일어나는 교통사고, 도시를 엄습하는 테러의 공포, 사산과 기형 출산의 불안 등이 소설 곳곳에서 섬뜩하고 시적인 묘사문들을 통해 독자들을 압도한다. 신화적 고대에 대한 동경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엔 김유진이 그리고 있는 도시는 너무 심하게 병리적이고, 절망적이다. 일찍부터 쉬운 범주화를 허용하지 않는 독특한 문법으로 근대적 시공간 곳곳에 편재해 있는 불안을 이처럼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낼 수 있는 신예 작가라면, 앞으로 그가 걷게 될 긴 여정에 미리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함정임, <푸른 모래>, 문학사상 12월호
함정임의 <푸른 모래>는 욕망과 죽음, 곧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사실은 한 몸의 두 얼굴이란 사실을 다시 지적한다. 사실 이 테마는 식상하고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함정임이 이 관습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남다르다. 푸른 모래, 사막, 동굴, 뱀장어, 바다 등과 같은 이미지들을 축조하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는 이 작품을 원형 상징들의 잘 진열될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는다. 소설에도 이미지즘이 가능하다면 이 작품은 그 계열의 앞자리를 차지해 마땅하다.

김원일, <팔공산>, 문학수첩 겨울호
올 2월에 출가된 김원일의 작품집 《푸른 혼》의 서두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푸른 혼》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배후로 지목된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구속과 고문, 처형의 고통을 증언하는 작품집이다. <팔공산>은 김원일의 문학적 역량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수작이다.
작가의 마음다짐만으로 은폐된 역사, 왜곡된 역사를 증언할 수는 없다. 그 은폐와 왜곡에 대응할 기록과 자료가 있어야 한다. <팔공산>을 읽다보니 김원일이 인혁당 자료를 상당하게 수집했다는 게 확인된다. 실존인물들의 행적, 판결자료 즉 실증의 힘이 보인다. 이 실증의 힘이 <팔공산>의 미덕 중 하나다.
사실 우리소설에 이런 실증의 힘이 부족했다. 작가의 마음다짐으로, 대항이념의 설정으로 은폐된 역사에 마주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김원일은 마음다짐이나 대항이념의 설정이 아니라 실증의 힘으로 박정희 시대의 인권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사실 이 점이 「팔공산」의 약점일 수 있다는 비판적 의견을 제출한 독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실증의 방법도 이 망각된 사건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미덕은 이 희생자들에 대한 김원일의 서술 태도다. 김원일은 억울하게 죽어간 「팔공산」의 주인공을 화자로 설정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주인공의 감정과 심리를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노출해버리지는 않는다. 인혁당 희생자가 소설의 화자이기는 하지만 이 화자 또한 객관적인 묘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적 수난자들이 화자로 설정된 소설일수록 감정의 과잉이라는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팔공산」은 그렇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아픔을 준다. 이 또한 「팔공산」의 미덕이다.

김윤영, <얼굴없는 사나이>, 작가세계 겨울호
해고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시대다. 누구든 해고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구든 그가 속한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실종될 수 있다. 공포의 나날이다. 두려움의 일상이다. 그런데 김윤영은 이 당대성을 ‘엄숙하게’ 서술하지는 않는다. 신인의 미덕이다. 이 미덕에 힘입어 김윤영은 당대성과 마주하되 날렵하게 당대성의 표정을 포착하는 장기를 보여준다. 이를 김윤영의 여유로 볼 수도 있고 김윤영 세대의 장점으로 부를 수도 있다. 그는 당대성의 문제를 일상의 문제로 치환해 능란하게 엮어가는 주목할 만한 재능을 지닌 작가이다.
여기 한 명의 실종된 중년 사내가 있다. 바로 정부장이다. 실종된 정부장이 소설의 화자는 아니다. 정부장의 후배가 이 소설의 화자다. 정부장의 면모와 행적은 오로지 후배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후배의 시선에 포착된 정부장은 ‘한결같은’ 사람이다. “갓 들어온 신입 여사원에게도 늘 깎듯이 존칭을” 쓰는 남자, “점심은 항상 회사식당 맨 왼쪽 창가 8번째 자리에서 먹고 책상 위에 놓인 가족의 각도조차 6년째” 그대로인 남자가 바로 정부장이다. 이 한결같던 정부장은 해고된 후 실종되어 버린다. 아니 정확히 말해 스스로를 실종시킨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선배의 실종을 탐문하던 후배의 시선을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 보자면 선배의 실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후배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 후배의 시선은 한 40대 중반 남성의 실종이 환기시키는 내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후배의 시선이 기본적으로 위선적이며 기만적인 까닭이다. 후배는 지하철에서 스스로 거지가 되어 우승열패의 질서로부터 자기를 은닉시키려는 선배를 만나고 선배의 아내와는 사랑 없는 섹스에 몰입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기만적으로 대처한다. 해고된 후 자기를 실종시킨 선배의 모습도 그렇지만 그의 예기치 않은 출현에 대해 눈감으려 하는 후배의 모습 또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진정성이 결여된 시대임이 분명하다.



출처_힘내라 한국문학 http://writer.for-munh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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