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 : [이경림 시집],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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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시집],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書評>
이경림 시집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무덤 안에서, 무덤 밖에서

이 향 지 (시인)

이경림의 첫 시집 『토씨찾기』(1992년, 《생각하는백성》)가 나왔을 때 세상은 조용했다. 그 무렵을 풍미하던 푸른 시집들보다 탁월했고, 시의 적절한 인식들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알만한 이들은 앉은 자리가 무거워서 공론(公論)을 회피했다. 1995년초 《세계사》에서 펴낸 두 번째 시집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역시, 몇몇 문예지의 상반기 결산 좌담프로에 이름 석자가 오르내린 정도였다. 두 번째 시집에 실린 「환상은 종양을 만든다」,「희망희망 누가 말했나」,「이상한 거리」,「꿈」등은 이런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다. <…네온이 휘황하다 하늘 가득 말들이 불을 켜고 뛰어 다닌다 안돼! /…너무 큰소리 치면 안돼 늙은 여자 문단 데뷔하면 안돼/시 잘 써도 별볼일이야 학연 없으면 안돼 말도 안되는 소리/하면 안돼…/아이들 밤벗꽃처럼 핀다 하얗게 울면서/꽃잎이 날린다/…>(「이상한 거리」), <…아름드리 나무의 나이테 같은 길을/뱅글뱅글 돌다가 나는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나는 무슨 혹처럼 그 끝없는 나이테 가운데 주저앉았습니다/…>(「꿈」).
그러나, 그는 나이테 따위가 주저앉히기엔 젊고 큰 시인이다. 그는 결국 맨손으로 북풍 속에 잠들어 있던 동토(凍土)에 봄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올 가을(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세 번째 시집『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는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연장선상에 있다. 두 번의 추위를 겪은 탓인지, 알몸으로 세기말의 밤을 건너는 자의 고초와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지만, 그 고초 그 쓸쓸함이 그의 시를 튼튼하게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찢어진 나는 더 찢어질 것도 없는 나는 질긴 것이 힘이네/아무데나 감겨서 그저 사시나무 떨 듯 떠는 힘/그것도 힘이라면 나도 힘 하나 가졌네…>(「상처들은 나무마다 환하다」)라고 능청을 떨 수 있는 힘. 밤의 주인인 어둠, 그 어둠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의 힘. 그 밤을 수없이 무너지며 살아온 자의 힘. 그는 이렇게 자신을 사로잡은 쓸쓸함의 힘으로 다른 쓸쓸함들을 껴안고 '저 건물'들에 둘러싸인 세기말의 밤, 생(生)의 옆구리를 깎으며 휘도는 「저 깊은 강」을 함께 건너간다.

이경림의 다른 시들에 비해서 다소 추상적인 이미지들로 짜여진 이 시는, 그 추상성으로 인해서 아름다운 오독을 유발시킨다. 강은 물의 길이며,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살이의 아름다움을 비유할 때 곧잘 동원되곤 하지만,「저 깊은 강」은 수평의 공간에서 우왕좌왕하는, 서로 먼저 가겠다고 클랙슨을 울려대는, <황원>에 비유될 만큼 삭막한 마른 강, 즉 도시의 복판을 흐르는 길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저 깊은 강」은 <저 타오르는 나뭇잎들/힐끗 돌아다보는 바람>이 보여주는 공기의 물결, 불빛을 받아 나뭇잎처럼 일렁이는 물결이거나, 물결처럼 흔들리는 나뭇잎이어도 무방한 수면(水面)을 오래 내려다보며, <산천처럼 깊고 물안개처럼 나직한> 관조에 빠질 수 없게 끊임없이 방해하는 강이다. 고층아파트 꼭대기에 쇠창살과 쇠난간을 두르고 있어도, 무시로 부풀어오르고 범람하는 광포한 소리의 물결을 가진 강. <쇠창살을 울리며 쇠난간을 때리며> 흘러들고 넘어온 <클랙슨 같은> 물결로 인해 강 안과 강 밖의 경계가 사라지고, 저 높은 강변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던 시인은 순식간에「저 깊은 강」의 바닥으로 <깊은 제 몸에 빠져 있>는 <꽃피우지 않는 나무들> 속으로 내려앉는다. 그리하여 저 높은 곳과 저 낮은 곳, 저 고요한 것들과 저 시끄러운 것들, 저 빛나는 것들과 저 어두운 것들, 저 시끌벅적한 세계의 내용들은 순식간에 통합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저>라는 관형사에 이끌린 아름다운 오독, 화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다니며 읽어낸 내용들이다. 이번엔 제목의 <저>와, 첫 행의 <저>와, 4연 첫 행인 <저 아래 줄지은 아파트 사이>를 빼고 읽어보자. 거기에 덧붙여서 제목의 <강>을 <길>로, 3연의 <누가>를 <나는>으로, <저 황원>을 <이 황원>으로 고쳐서 읽어보면 이 시를 쓰게 한 진짜 정황이 환하게 다가온다. 「저 깊은 강」의 화자는 고층아파트 난간 안에 갇혀서 강물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이 시의 진짜 화자는 도시의 골목길을 실바람처럼 걷고 있다. <실바람으로 잔가지를 지나>가고 있다. <쇠창살을 울리며 쇠난간을 때리며/울려퍼지는 클랙슨>이 아니라 <클랙슨 같은> 이 북새통 이 황원에서 이 쓸쓸한 노래는 불러서 무엇하겠느냐고 자문하며, 삶의 무덤에 다름 아닌 <깊은 제 몸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대충 읽어도 자세히 읽어도 아름답다. 친근하면서도 불확실한 물안개 같은 무엇이 발목을 붙잡고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바닥에 다름 아닌 길의 모습에 나무의 이미지를 겹쳐놓음으로써 아무에게나 밟히며 누워있는 길을 나무처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그 길 안에 서 있는 나무를 길의 이미지에 겹침으로써, 저 깊은 강의 바닥이 되어 드러눕게도 한다. 그는 결국 「저 깊은 강」의 내용들과 하나가 된 자신을 밟으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유자재로 사물들의 이름과 자리를 바꾸거나 불필요한 품사를 덧씌우는 방법으로, 자신을 타자화 시키고 객관화 시키고 독자의 시선을 교란시켜 오독을 유발시킨다.「담」,「한 떼의 기린들이」,「희망 혹은」,「내 속의 알함브라」,「더이상 나무가 아닌 나무들이」,「끝이라는」,「장마」,「보르헤스의 정원」등, 자신이나 세계를 향한 냉소를 바탕에 깔고 씌어진 시들이 이런 기법에 기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경림은 시의 급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 그의 시어들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힘이 있고, 그의 관조는 눈물겨울만큼 삶의 정곡을 꿰뚫고 있다. 그는 현대시가 요구하는 좋은 시의 요건들을 넘어선 곳에서 시를 쓰고 있다. 그 앞에는 금단의 열매도 성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를 허약하게 한다는 이유로 될 수 있으면 줄여서 쓰려고 하는 부사, 형용사, 감탄사, 직유, 의성어들도,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겹쳐놓아도 저마다 얼굴을 들고 이상한 광채를 발한다. 그 비밀은 무얼까? 늘 보는 사물들도 그의 시속으로 들어오면 생경한 얼굴로 눈을 뜬다. 그 비밀은 무얼까? 그것은 그가 선천적으로 시를 갖고 놀만큼 탁월한 언어감각을 지녔으며, 덧붙여 자신이 정해놓은 시의 원칙을 고수한다는데 있다. 그의 첫 시집 「토씨찾기」의 서두를 장식하는「詩」에 그 비밀의 열쇠가 있다. 전문을 옮겨보겠다. <지우기, 드러내기, 꺾기, 구부리기/건너뛰기, 감추기, 꼬집기, 두들겨 패기/숨기, 뒤집어씌우기, 빼기, 넣기/꼬리 붙이기, 꼬리 감추기, 벌벌 기기, 껄걸 웃기/부들부들 떨기,/숨 멈추고 생각하기, 찔끔찔끔 짜기//지울 수 없는 희망처럼/건너뛸 수 없는 슬픔처럼/감출 수 없는 꿈처럼/숨을 수 없는 生처럼//아아, 바람이 분다./죄없는 것들이 흩어지고 있다.> 약간의 변형, 약간의 해체는 있을지라도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 비밀은 보이지 않는 것은 쓰지 않는다는데 있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려냄으로써, '사실'을 '초현실'로 탈바꿈시킨다. 이 두 번째의 비밀이 가장 성공한 예가「내 앞에 역광으로」이다. 그는 첫 번째 비밀의 '지우기'에 해당하는 시를 이번 시집에 여러 편 실었다. 「표류, 또는 빗금」,「어머니, 지우신다」등이 지우면서 드러내기 방법에 해당된다.
이경림은 인식의 내용들을 쉽고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친근하고 다양한 이미지들을 중첩시키고 굴절시키고 튕겨내고 껴안다가도 꽈과광꽝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에 이르면, 단정을 유보한 채 빠져버린다. 나는 다 보여주었으니 해석은 독자여 너희 몫이다. 나는 단정도 해탈도 하지 않겠다. 나는 볍씨를 주는 사람이지 밥까지 지어 주지는 않겠다. 강가까지 데려다 주었으니 물은 스스로 먹어라. 나는 씹어서 먹여주는 시를 거부한다. 그것은 자칫 인식의 빈곤이나 미숙으로 오인 받을 소지가 있다. 묘사에 치중한 시들에서 이런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는 잔잔한 인식들을 담담한 어조에 담아낸 시들, 예를 들면「후박나무 잎새 하나가」,「휘도는 골짜기」,「거대한 빵」,「저 햇빛」,「풋것처럼」,「영롱한 아침」,「사람 지나간 발자국」들이 훨씬 깊고 공감의 폭이 넓어 보인다.

빵 속에 들어앉아 자신의 몸과 같은 빵을 뜯어먹으며 이만큼 아름답고 슬픈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얼마나 될까? 자신과 가족의 빵을 벌기 위해서 빵의 감옥으로 들어간 사람. 빵 속에서 잠을 자고 <아메바 같은 아이들을> 길러낸 사람. <슬픔의 효소들>에 뜯어 먹힌 빵은, <구멍마다 사람들 꿈처럼 들어앉>힌 거대한 빵은, 비틀거리는 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뜯어 먹히면서도 따스한 집이 되는 빵의 고난과 자신들이 뜯어먹는 빵 속에 빠져서 헤어날 길 없는 사람들의 비애가 겹쳐져서 <말랑하고 따스한 슬픔>의 멱을 감게 한다. 그러나 이경림은 이 거대한 빵이 언제까지나 자신을 가두고 뜯어먹게 내버려두지 않으려 한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이 그것을 증명한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들이/거대한 오븐 속에서 꿈틀꿈틀/부풀어오른다/오오 저 거대한 빵> 그는 이제 빵 밖에서 빵이 익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네 속에 들어있지 않다고 너는 다만 내가 배고플 때 뜯어먹을 빵일 뿐이라고, 내 배를 채워주고 똥이 될 빵일 뿐이라고, 희화적으로 시를 끝내고 있지만, 그는 안다. 그가 아무리 <오오 저 거대한 빵>이라고,「거대한 빵」앞에 <저>라는 매김씨를 씌워 자신을 빵으로부터 해방시키려해도, 그 몸짓 또한 거대한 빵을 더욱 부풀게 하는 슬픔의 효소를 더할 뿐인 헛짓이라는 것을.

이경림의 시는 삶의 현장에서 씌어지기 때문에 그 이미지들이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는 굳이 세상의 추함을 감추거나, 아름다움을 과장해서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시장 어귀 군고구마장수 옆, 더께로 옷을 껴입은/미친 사람 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두리번거리네 그의 시선이 딱!/나와 부딪치네, 살기가 휙 지나가네, 씩 웃네, /살기가//…>(「중얼거리다」) 아마 나중의 <살기가>는 살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미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살기(殺氣)를 달래는 대귀(對句)로 배치된 것 같다. 그래 시장 통에서 만난 미친 사람 너도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지, 네가 안심하고 살 곳은 여기 뿐이다, 시 속으로 끌어들여 살려 놓는다.
그의 시들은 제목과 같이 읽어야 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그가 구태의연한 시쓰기에서 벗어나 보려는 의도로, 큰 글자 작은 글자로 분리되는 세계의 구분을 없애려는 의도로 보인다. 세상은 얼마만큼 작아져보여야 죽음에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시, 「지저귀다」를 제목을 고딕으로 표시해서 시의 내용과 연결해서 읽어보겠다.

지저귀다

삶이 죽음보다 무겁게 눈꺼풀을 내리누를 때, 그는 조름에 겨운 참새의 눈을 거울삼아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본다. 참새 눈은 보리쌀만 하다. 참새 눈을 보면서도 보리쌀 걱정을 해야 할만큼 그는 사람살이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새의 눈꺼풀은 아래위가 같이 닫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늘이 내리 누르고 땅이 자라 올라 죽음에 이르게 되는 구조,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점점 더 무겁게 닫히는 참새의 눈꺼풀 안에서 작아지고 작아지던 나무가 눈꺼풀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아니 눈꺼풀 밖으로 해방을 맞는 순간, 자나깨나 눈꺼풀에 보리쌀을 매달고 살던 참새의 생애는 끝난다. (미친 듯 고요)해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참새는 죽어도 다른 참새들은 남아서 다시 지저귀기 시작한다. 죽은 참새의 눈꺼풀을 벗어난 나무는 죽은 참새가 놀고 머물던 공간이다. 그 참새는 죽어도 나무는 남아 다른 참새들의 놀이터가 된다. 그 나무의 그림자가 겨자씨만큼 작아질 때까지 <그 그늘에서 조개까서 파는 저 늙은이>. 삶이 죽음보다 지독하다.
이경림의 시세계는 〔무덤의 시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무덤의 거죽과 내용에 깊이 닿아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없는 약값이 보이지 않도록, 없는 매장비가 보이지 않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암매장한, 자신의 발로 꼭꼭 밟아서 묻은 세 살 박이 여동생. 비가 비수라는 것을 알게 해준 그 다음 날의 비(「후기」). 또 여러 편의 「무덤에서」를 쓰게 한 남동생의 죽음 등이, 그를 무덤의 시인으로 기억하게 만든 것 같다. 그가 인식하는 세계는 무덤이다. 서 있는 건물도 달리는 건물도 뜯어먹는 빵도 악몽도 희몽도 무덤일 뿐이다. 우리 중 무덤의 것을 먹지 않은 자 누구인가!

이경림은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끊임없이 그 성공을 의심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시는 이미지들의 거울놀이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풍자시이며 그의 풍자는 고급하다. 고급하다는 말은 잠깐 폭소를 터트리고 잊어버리는 풍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씁쓸한 냉소를 머금고 우리들의 시대와 바벨의 시민인 우리 스스로를 긍정하게 한다는 말이다. 바벨은 옛 바빌로니아의 수도이며 풍속이 혼란한 땅이었다. 바벨은 멸망했지만 바벨은 계속된다. <복제하고복제되는무수한햇빛>처럼. 그는 마주보는 이미지들의 거울놀이를 통해 수천년전의 도서관을 불러내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그의 전면을 읽지 않고 그의 등뒤를 읽는다. 그의 등짝은 가이없다. 아우라 하나 지니지 못한 가이없는 허공이다. 그의 등뒤에는 수억만 권의 책이 그를 읽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읽고있는 책도 읽는다. <복제하고복제되는무수한햇빛들>은 그래서 무덤 속의 것들이다. 그는 펼쳐든 앞쪽의 책으로부터도, 등지고 앉은 뒤쪽의 책으로부터도, 가이없는 등짝을 감출 길이 없다. 그 가이없는 등짝에는 깨알같은 말들이 박혀 있다. 그 말들은 보이는 말들이 아니라 감추어진 말, 비좁은 괄호 속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말들이다. 절벽 위의 한 송이 꽃 같은, 전쟁 같은, 진실 같은,

그는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이 시대가 <역자의 주를 달고 번역되는 엉뚱한 역서들>로 비유되는 서책 같은 시대, 그런 서책들이나 읽고 읽히는 시대, 그런 서책들 사이에나 해가 뜨는 한심한 시대라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은 일부러 각진 한자들을 써서 풍자의 대상이 구시대의 잔재들임을 시사한다. 풍자시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하는 「中山經」 역시 고전의 한 부분을 페로디하여 <해바라기 나무에 살구 잎새가 달린 노란꽃의 시절>, 독서 같은 괴물이나 뒤뚱거리는 불륜의 시절임을 풍자한다. 이 동물을 잡아먹어야 목에 난 혹을 고칠 수 있다며 中山으로 지칭되는 중심들이 새로워져야 할 때임을 깨우치고 있다.

그는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네」「꿈, 바다, 여인들」을 통해, 작은 것들 안 보이는 것들 묶여있는 것들 꼼짝 못 하는 것들이 끌고 가는 덩치 큰 세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쥐며느리가 바윗장을 뒤집어> <반딧불 한 마리 밤바다 끌고가>. 꽁무니에 불을 매단 개똥벌레들이 끌고 가는 밤바다. 그러나 시인은, 시는, 밤의 어느쪽 귀퉁이를 무너뜨리며 아침이 오는가를 눈뜨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언어의 달인임을 한 번 더 확인 시켰다. 그는 이제 시를 갖고 놀만큼 능숙해졌다. 그는 이제 누가 보아도 이것은 이경림의 시라고, 저 언덕 위의 저 시의 집은 이경림의 집이라고 알아볼 만큼 독특한 시세계의 외벽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다음 단계는 시의 내장을 따뜻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남기는 일만 남았다. 시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튼튼한 내장을 지녔을 때 장수가 가능하다. 나는 그가 지나가는 시인이 아니라 오래 남는 시인이기를 빈다. 우리는 아직 무덤 밖에 있다. 햇볕이 이렇게 쨍하다.

(鶴山文學·1997,가을 겨울 합본호)